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기 전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기 전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지난 11일 오후 5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관저를 떠나던 시각. 이를 중계하던 TV 방송에 출연했다. 그가 관저 밖으로 모습을 보이기 전 진행자가 소감을 물었다. “지지했든, 안 했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쫓겨나듯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착잡한 심경일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차에서 내린 그가 관저 정문 앞에서 보인 너무나 당당한 태도 때문이었다. 옅은 미소를 띤 채 배웅나온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악수했다. 특히 각 대학 과 점퍼를 입은 젊은이들과는 포옹을 나눴다. 어깨를 토닥이기도 했다. 주먹을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양새는 마이크를 찾는듯했다. 졸지에 황당함이 밀려왔다. 사정 모르는 외국인이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마도 인기 절정 대통령의 나들잇길 애민 현장쯤으로 봤을 법하다.

그래서 한 마디 더 보탰다. “왜 대통령직을 파면당했나. 헌법 수호 책무 위반 때문이 아닌가. 자숙과 반성은커녕 개선장군처럼 행동은 정말 부적절하다. 결국 지지층을 볼모로 계속 정치투쟁을 하겠다는 시위가 아닌가.” 사저 앞에선 더 가관이었다. 밀집한 지지자들은 물론 환영 현수막과 꽃다발까지 등장했다. 만면에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의 부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그녀 역시 당당한 표정이었다. 같은 날 나온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 민심을 보여준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에 69%가 지지를 보였다. 반대는 25%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이날 퇴거 행사는 “그들만의 정신 승리”였다.

지켜본 국민의힘 역시 적잖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당장 조기 대선을 앞둔 시점.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행태에 뿔이 날 법도 하다. 그러나 조용했다.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 당에서 배출했던 대통령. 그가 쫓겨나는 마당에 박하게 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파면 후에도 지도부뿐 아니라 중진까지 찾아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언론에선 “상왕”이란 지적을 내놓았다. 아울러 ‘막후정치’까지 예상했다. 실제 현재까지 흐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뚜렷한 조짐은 나경원과 윤상현의 출마다. 파면 직후 윤석열이 관저로 가장 먼저 부른 이가 나경원. 윤상현은 탄핵 국면에서 가장 빨리, 가장 세게 ‘윤석열 옹호’에 섰던 장본인이다. 당초 대권보다 당권 도전설이 돌던 두 사람. 둘의 급변침은 결국 윤석열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반면 오세훈과 유승민은 경선 출마를 전격 포기했다.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탄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과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오세훈의 불출마 변이다. 여기서 반성 없는 윤석열과 국힘에 대한 따가운 비판이 읽힌다. 아예 유승민은 직격했다. “보수 대통령이 연속 탄핵을 당했음에도 당은 제대로 된 반성과 변화의 길을 거부하고 있다. (중략) 기득권에 집착하는 모습에 분노한다.”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을 찬성했던 당내 중도 대표주자들. 이들의 퇴장에 윤석열은 빙그레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여전한 자신의 영향력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진작 윤석열은 국힘 경선을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이른바 ‘한덕수 대망론’의 배후로 처음부터 거론됐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한덕수가 주자로 떠오른 건 한순간이었다. 지난 8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법제처장 이완규와 판사 함상훈을 전격 지명한 때부터다. 정치권 모두 놀랐다. 민주당은 경악했고, 국힘은 어리둥절했다.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 임명 거부 이유로 그가 내세웠던 논리다.

그렇다면 선출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한을 작심해 발동한 이번 행위는 뭔가. 누가 봐도 자기모순이다. 그래도 문제없다는 듯 밀어붙였다. 당연히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는 시선이 제기됐다. 지명 재판관들이 ‘무사히’ 임명되면 헌재는 완전한 보수 우위 구도로 재편된다. 탄핵 국면에서 헌재에 좌절했던 보수 지지층. 한덕수가 거의 ‘구세주’처럼 보일 듯하다. 이완규 지명은 의미가 더 각별하다. 그는 윤석열의 법대 동기로 40년 지기이자 ‘집사 변호사’. 자연스레 윤심(尹心)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덕수 고교 동창인 유인태는 “원래 깡다구가 없는 친구”라고 촌평했다. 그래서 이번 한덕수의 돌발 행동 뒷배로 윤석열이 지목된다. 국힘이 이런 함수를 모를 리 없다. 재판관 지명을 “용단”으로 치켜세웠다. 한 걸음 더 나가 대선 출마를 종용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정부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리스크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혼란은 없을 것이다.” 국힘 원내대표 권성동의 말이다. 한덕수 출마에 따른 국정 공백 우려에 미리 방어막을 쳤다. 기다렸다는 듯 소속 의원 50여 명이 연판장을 돌리며 ‘한덕수 꽃가마’를 띄웠다.

아직 한덕수는 결심하지 못한 듯하다. 15일까지 경선 후보 등록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상황 끝이 아니다. 무소속 출마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대선 본선 무대에 독자로 나선 뒤 국힘 후보와 후보단일화 방안이다. 사실 현실화 하긴 쉽지 않다. 한 번도 선거에 나가지 않았던 한덕수. 자칫 ‘제2의 반기문’ 꼴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점점 힘을 얻는 건 역시 윤석열 때문이다. 국힘 후보가 친윤이 아니거나, 경쟁력이 뒤처지면 그 대비책이 바로 한덕수 카드다. “파면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근들의 각본이다.” 전 최고위원 김종혁도 똑같이 보고 있다. 이런 지적에도 한덕수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대인이시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고.” 한덕수가 지난해 9월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을 평가한 대목이다. 이 정도 마음 씀씀이라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진짜 이렇게 굴러갈까. 일단 윤석열은 자신만만해 보인다. 헌재가 파면하고, 국민 다수가 손가락질해도 전혀 괘념치 않는다. 11일 관저 퇴거 때 행동이 그 증표다. 자아도취에 의한 정신 승리로 무장한 채 그냥 질주할 태세다. 여기서 국힘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선을 흔드는 윤석열의 손을 그대로 놔둘 것인가. 김종혁 말마따나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국힘이 지는 건 사실 그들의 문제다. 진짜 걱정은 윤석열이 ‘괴물’로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그에 동조하는 세력은 더 신나서 한국 민주주의를 뒤흔들 것이다. 그게 정말 걱정된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 재 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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