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견에서 드러난 '이재명 초심'
첫째, 우쭐하지 않는다, 둘째, 여전히 배고프다, 셋째, 유연하다
넷째, 냉철하다, 다섯째, 일머리를 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여러모로 파격이었다. 취임한 지 30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빨리 국정운영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형식 역시 격식 파괴였다. 기자석과 높이를 맞춘 연단에, 타운홀 미팅이었다. 그리고 진짜 아무런 각본 없이 기자들과 문답을 나눴다.

정작 놀라운 대목은 따로 있었다. 내용이었다. 정확히 말해, 대통령직에 임하는 그의 각오였다. "열심히 잘하겠다." 이처럼 으레 듣는 말이 아니었다. 대통령 된 뒤 변화된 인식을 진솔히 털어냈다. 어쩌면 진작 속으로 삭혀왔던 말일 수도 있다. 회견 말미쯤 절로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국민의힘은 정말 이재명 무섭겠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 쟁취. 그런데 다음 대선도 국힘으로선 절대 쉽지 않다. 이 대통령이 회견 때 밝힌 대로 진짜 끝까지 간다면 말이다.

국힘이 그를 무서워할 이유는 얼추 5개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 우쭐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토록 바라던 일을 성취하면 우쭐하기 마련이다. 그게 이른바 '대권'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는 달랐다. "너도 싫지만 덜 싫으니까 이런 선택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중략) '일을 맡길 만하네'라고 생각을 바꾸도록 만들어 내야 된다." 이 대통령은 자신과 민주당을 선택한 민심을 직시하고 있었다. 계엄을 한 정권이, 대통령에게 쩔쩔맨 국힘이 싫어서 할 수 없이 찍은, 적잖은 표를 말이다. 일종의 차악론(次惡論)적 선택을 인식하고 있는 셈. 그만큼 자신을 더 낮출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오버랩됐다. "그럼 전(前)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집권 초 장관 후보자 자질 논란에 대해 그가 반박 삼아 한 말이다. 그것도 소통을 명분으로 도입한 '도어스테핑'에서 '우쭐함'을 거침없이 과시했다. 취임 전부터 그는 거침이 없었다. 대통령 집무실을 일방적으로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그의 위세에 눌려 여당 대표가 졸지에 쫓겨났다. 정권 몰락의 서막이 벌써 올랐던 셈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대통령이 여전히 '배 고프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20 몇 %는 '절대 아주 아주 못한다' 이렇게 평가한다는데 (중략) 그분들까지 제가 설득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대통령 지지율 80%를 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어느 나라, 어떤 정권에도 절대적 비토층이 20% 정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 어떻게? "실적과 성과로 그분들의 진짜 삶을 개선해서 밉지만 괜찮네, 말하고 생각하실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제가 할 일이죠." 국힘은 정말 무서울 것 같다. 자기들이 모셨던 대통령과 진짜 너무 딴판이라서, 더 그럴 것 같다.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다." 윤석열은 자신 말대로 집권 내내 민심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 끝은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이었다.

셋째 이 대통령은 유연하다. "저는 야당 대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의 국정을 해야 한다." 전임 정권 장관 유임과 친윤 검사 중용 논란에 대한 답변이다. 사실 그를 반대한 사람들로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지난해 총선 민주당 공천 때 비명계가 대거 탈락하자 나온 말이다. 그래서 생겨난 인식은 "이재명은 자기 사람만 챙긴다"는 것. 그는 자신의 포지션이 바뀌자 바로 생각을 바꾼 것 같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시멘트, 자갈, 모래, 물을 섞어야 (단단한) 콘크리트가 된다. (중략) 시멘트만 잔뜩 모으면 그냥 시멘트 덩어리가, 모래만 잔뜩 모으면 모래더미가 될 뿐이다. 차이는 불편하지만 시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자연스레 윤석열이 떠오른다.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탄핵 뒤 자기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지지층에 건넨 그의 메시지다. 끝까지 국민 갈라치기식의 분열적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았다.

넷째 이 대통령은 냉철하다. "정치나 외교에선 감정을 배제해야 된다. 철저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된다." 단절된 남북 관계를 대화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말했다. 철저히 실용적 셈법도 덧붙였다. "상대가 1개 득을 보더라도 내가 3개 정도 득을 볼 수 있다면 내가 2개 더 득 보는 거니까 그건 이기는 길이지 않는가. (중략) (상대가) 오로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게 우리에게 득이 되느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북정책에 한정된 계산법이 아닐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도 이렇게 다가서면 국힘으론 '대략 난감'할 터. 내칠 명분 부족 탓에 그의 주도에 끌려갈 공산이 크다.

다섯째 이 대통령은 일머리를 안다. 이번 회견 뒤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게 '로봇 태권V론'이다. 공직사회를 조정자 역량에 따라 괴력을 발휘하는 로봇 태권V에 비유한 것. 재밌고 신선했다. 한 마디로 공무원의 자발적 의지를 끌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아마도 국힘은 또다시 윤석열을 떠올렸을 것 같다. 툭하면 대통령 격노설로 찬 공기가 맴돌곤 했던 당시 공직사회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 밖에도 국힘이 뜨끔했을 말은 많다. 이 대통령이 특별감찰관을 자청하며 "가족의 불행 예방"을 강조한 게 한 사례. 자기 아내를 겨냥한 '김건희특검법'에 말려 자멸한 윤석열과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회견 뒤 겉으론 국힘은 태연자약하다. 물론 '내 코가 석 자' 때문일 수 있다. 대선 패배 뒤에도 갈팡질팡하는 혁신, 당권을 노린 계파간 세 싸움 등. 그것보단 이런 의구심이 더 강하게 작동한 건 아닐까. '이재명이 설마 끝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회견에서 나타난 이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실제 회견이 있던 날 민주당은 김민석 총리 인준안을 결국 밀어붙였다. 켜켜이 쌓인 김 총리 재산 의혹 소명을 요구하며 국힘이 불참한 가운데 말이다.

다음날엔 30조 원이 넘는 추경안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추경은 속도가 생명"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그 전엔 국힘이 요구했던 법사위와 예결위 위원장 두 자리 모두 민주당이 독식했다. 회견을 보면서 '앗, 뜨거라' 했을 국힘의 두려움. 그 직후 당정 태도를 보면서 시나브로 잊어버렸을 법하다. 무엇보다 국민 다수, 그중에서도 이 대통령이 꼭 설득하려는 20% 비토층은 어떻게 생각할까.

'달콤한 말로 국민 환심을 사기 위해 쇼만 실컷 했구먼.' 이 대통령의 진정성은 조만간 판명날 것이다. "우리가 잘못하면 또 심판당할 겁니다. (중략) 잘못하면 바꾸겠죠." 회견 중 국민이 무섭다는 걸 강조하며 그가 한 말이다. 이 생각을 두고두고 되뇌시라. 그러면 정말 대통령을 국힘은 무서워할 것이다. 아니, 대통령을 국민이 사랑할 것이다. 유지가 관건이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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