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전당대회에서 슬그머니 지방공직선거 후보의 '상향식 공천'이 개악되었다. 그러나 입을 모아 '상향식' 외치던 최고위원 후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어느 당이건 전당대회 때는 항상 그렇지만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모든 최고위원 후보들이 지구당을 강화하겠다, 공천을 상향식으로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대의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구당대의원들의 표를 모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날 최고위원 선거에 앞서 이루어진 당헌개정에서 지방선거후보자의 상향식 공천제도가 개악되었다. 시장,군수,구청장 및 시.도의원 후보의 추천권이 지구당 대의원대회에서 실질적으로 지구당위원장에게로 넘어 간 것이다. 물론 어느 최고위원 후보도 그리고 당선자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헌 제9장 '공직선거'의 제102조 '시장, 군수, 구청장후보자의 추천'과 제103조의 '시.도의원 후보자 추천'에 관한 조항이 과거에는 '지구당 대의원 대회에서 선출하여 시.도지부 간부회의의 의견을 붙여 당무위원회의 인준을 얻어 총재가 추천한다.'고 되어 있던 것에 '다만, 지구당 대의원대회는 20인 이상의 후보자 선정위원을 선출하여 후보자 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자 선정위원회에 추천 후보자 선정을 위임하거나, 지구당 당원 대회에서 추천 후보자를 선출할 것을 의결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붙인 것이다.

이는 과거에는 지구당 대의원 대회에서만 후보자를 추천 할 수 있던 것을 그 선출 주체를 확대하여 대의원 대회의 의결에 따라 후보선정위원회나 전체 당원대회에서도 후보자를 선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견 이는 전체 당원대회에서의 선출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서 당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한 상향식 개정으로 보이지만 그 숨은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투표할 권리를 가진 당원'의 기준을 확정하기가 불가능한 현재의 지구당 구조에서 전체 당원들이 모여 투표를 하는 방식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지금의 대의원 대회의 틀안에서 대의원수를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화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는 것이 다수의 당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이미 지난 6월 8일 지방의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서울 지역의 모 지구당에서는 현행 제도 하에서 천명이 넘는 대의원이 참여하여 경선을 통해 시의원 후보를 선출하여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당내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 개정의 실질적인 의도는 '후보 선정위원회'의 신설에 있다. 지구당위원장이 이미 정해 놓고 추천하는 20명 이상의 선정위원회로 대의원 대회가 그 권한을 넘기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지구당 대의원들은 위원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위원장이 요청하면 아무 소리 못하고 만장일치의 박수로 그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그 후 20명 남짓 밖에 안 되는 후보자 선정위원회가 거의 예외 없이 위원장의 뜻을 따르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기초 단체장과 광역의원의 추천권을 완전히 지구당 위원장에게 넘기게 된 것이다.

지방선거후보 추천권을 독점하려는 지구당위원장들의 요구는 오래된 것이지만 특히 지난 6.8지방재보선에서 드러나 문제점에 대한 중앙당의 공감이 이번 개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지난 재보선에서 서울 모 지구당은 대의원들이 한 후보를 압도적으로 선출해 놓고 보니 전과가 8범이나 되어서 이를 중앙당이 재조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중앙당과 지구당위원장이 본선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후보가 선출되는 사례도 있었다. 결국 두 지역 모두 본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했다.

후보자질이나 본선경쟁력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없이 개인적 인간관계나 금품제공에 따라 투표하는 일부 대의원들의 행태가 1,2백명에 불과한 전체 투표수에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게되는 것은 물론 문제다. 그러나 이는 대의원 수를 확대하는 것과 중앙당의 최종심사권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지구당 위원장 개인에게 그 권한을 위임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수의 평가다.

이미 지구당 대의원 대다수가 지구당위원장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지구당위원장의 의사는 상당 부분 반영되게 되어 있다. 결국 후보선정위원회를 통해 당원은 물론 대의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통로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를 지구당 대의원들이 선출하는 것은 민주당이 다른 당에 비해 민주적인 정당임을 자랑할 때 항상 내세워왔던 부분이다. 최고위원 경선의 분위기 속에서 이 하향식 개악은 어물쩍 넘어갔지만 앞으로 있을 재보궐선거와 2002년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kimys67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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