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후지모리(62)는 국가정보부장의 야당의원 매수장면이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돼 대중에게 폭로됨으로써...

알베르토 후지모리(62)는 국가정보부장의 야당의원 매수장면이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돼 대중에게 폭로됨으로써 그의 10년간 철권정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번 매수사건과 관련해 조기총선을 실시한 후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겠다고 선언한 알베트로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후지모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계 이민 2세다. 그의 부친은 1934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카와치시에서 이민선을 타고 페루로 갔다.
후지모리는 이민 초기 부친이 막노동을 전전하는 궁핍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모범적인 우등생으로 성장했다. 61년 국립 리마농과대학 농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그대학에서도 농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모교인 리마농대의 교수로 있었고, 84년부터 대통령에 출마하기 직전인 89년까지는 학장으로 재직했다.

80년대 중반 전국대학협의회 회장과 국영 TV방송사 대담프로그램의 사회자를 맡기도 했던 그는 페루가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 하다 뜻을 같이하는 대학교수와 전문직업인들을 중심으로 운동단체를 조직했다. 그는 89년 11월 이 단체를 '깜비오90'(개혁90)이라는 정당으로 등록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파산 직전의 페루를 살려보겠다는 것이 출마의 변이였다.

당시 후지모리는 집과 땅을 팔아 선거자금에 충당했으며, 농촌과 고지대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했다.
그가 스페인 정복자의 후예인 백인이 아니라는 점과 후지모리의 생일이 페루가 스페인 통치로부터 해방된 독립기념일(1872년 7월 28일)과 같다는 점도 대중들에게 묘한 기대심리를 불러일으켰다.
90년 6월 10일, 후지모리는 마침내 '우익 민주전선연합'이 내세운 마리오 마르가스 요사후보를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집권 후 후지모리는 과감한 개혁을 실시한 결과 7000%에 이르던 물가상승률을 1년만에 140%로 낮추었고, 작년에는 4%라는 놀라운 업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파국의 씨앗은 가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지모리는 74년 토목기사 출신의 수산나 히구치 여사와 결혼,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92년부터 남편과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히구치 여사는 남편 측근 고위 공직자들이 부패에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하거나 통치 스타일이 권위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다음 대선에서는 자기가 출마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분노한 후지모리는 94년 그의 딸 케이코를 영부인으로 임명한 뒤, 부인과 별거를 거쳐 이혼을 했다.
이번 야당의원 매수가 담겨있는 비디오 테이프 역시 히구치 여사가 언론에 흘렸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지난 96년에는 좌파 반군들이 4개월간 일본 대사관저를 점거했을 당시 군대를 진두지휘, 인질 71명을 구출함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97년에는 자신의 3선 연임에 걸림돌이 되는 헌법재판관 3명을 제거했을 정도로 앞뒤를 가리지 않는 냉정하고 권위적인 독재자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집권이전부터 일본과 한국식 정치모델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의 경제개발계획에 관해 한국정부에 자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슬하에 4남매를 뒀으며 서양장기와 축구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페루인질사태 진압으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

다음은 후지모리 대통령 집권 10년 주요사건 일지다.

▲ 90년 7월28일 = 여당후보인 저명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근소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
▲ 92년 3월5일 = 군부의 지원하에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뒤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중단시킴.
▲ 93년 12월11일 = 단원제 및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헌법 채택.
▲ 95년 3월9일 = 유엔 사무총장 출신인 하비에르 데 케야르 후보를 물리치고 재선.
▲ 96년 7월20일 = IMF 구제금융 도입.
▲ 〃 8월23일 = 3선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안 도입.
▲ 97년5월29일 = 의회, 후지모리의 3선 도전 권한에 의문을 제기한 헌법재판관 3명 해임
▲ 98년 10월26일 = 에콰도르와의 국경분쟁 종식을 선언하는 평화협정 체결.
▲ 99년 11월13일 = 칠레와의 국경분쟁 종식을 선언하는 평화협정 체결.
▲ 2000년 4월9일 = 대선 및 총선 실시.
▲ 〃 5월29일 = 결선투표를 통해 대통령 3선에 성공.
▲ " 9월16일 = 정보기관장의 야당의원 매수 추문 속, 의회 및 대통령 선거 조기 실시와 불출마 선언

jchong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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