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영수회담이 의제조율 없이, 합의문 발표도 준비하지 않은 이례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질 계획. 합의문 없는 영수회담이 국정현안을 풀어 나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관심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는 9일 11시 오찬을 겸한 여야 영수회담을 갖는다. 지난 휴일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영수회담 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청와대 비서진은 방대한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고, 이 총재도 당내외의 여론을 수렴하고 당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들어 이번이 6번째 영수회담으로 매번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오늘 가지는 영수회담에서는 어떤 결론이 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여야의 국정현안에 대한 인식 차가 커 영수회담의 의제와 형식, 합의문 발표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주목되기도 한다.

지난 7일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과 주진우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이 영수회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만났지만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의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고 전하고 있는데, 의제조율이 실패한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공동발표문이 나올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두 분이 논의하다가 의견접근을 이루고 이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양측 대변인을 통해 발표할 것"이라고 전한다. 주진우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도 "의제를 조율하지 않고 자유롭게 얘기하기로 했으며 합의문을 만들 계획은 없고, 굳이 합의할 내용이 있으면 양쪽 대변인을 통해 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우 이례적인 형식의 영수회담이다. 하지만 사전 조율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두 영수의 논의가 국정현안을 풀어 나가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 예측하기 힘든 대목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총재의 의견을 듣는데 비중을 둘 계획인데, 정치적 쟁점현안의 해결보다는 국민적 컨센서스의 형성 차원에서 영수회담에 임한다는 자세다. 이 총재는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고 할말은 다 하면서 경제문제와 의약분업문제를 집중 거론한다는 계획이다.

영수회담에서는 경제문제, 남북문제, 의약분업문제 등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형식상 각 분야별로 의견을 제시하고 합의하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민생과 경제현안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관련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되고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주로 각종 법안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야당의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7일 의사협회, 약사협회, 병원협회 대표들로부터 의약분업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당내 의약분업특위 위원장인 강재섭 부총재와도 장시간 의논했다. 민생현안인 의약분업 문제를 주요하게 거론할 것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일방적 대북지원을 지적하면서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총재가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당적이탈'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지 관심이다. 이 총재는 대통령이 현 난국을 수습하고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를 정치적 주장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영수회담에서 거론한다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두 정상이 4.24 만나 합의했듯이 '상생의 정치'를 이룰지 주목된다. 서로 의제조율 없이 합의문 발표도 계획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관계가 '상생의 정치'로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는 어려워 보인다. 영수회담 이후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회담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서로 만족할 때 여야관계가 급속히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