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에서 남북문제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총재는 현격한 시각차를 보였다. 특히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과 '미군철수'에 대해 논란이 집중되었다. 과연 북한은 고려민주연방제를 포기한 것인가? 미군철수는 철회한 것인가?

여야 영수는 9일, 남북관계 진전의 `속도조절론', 대북경협의 상호주의 여부,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한 송환문제, 주한 미군철수 문제, 연방-연합제 통일방안 등에 걸쳐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이총재는 특히 북한의 '낮은 단계의 통일방안'을 김대통령이 합의해준 것에 대하여 "긴장완화가 전혀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연방제 운운하는데,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것은 어떤 수식어를 붙이든 용납할 수 없다. 국민적 동의를 필요로 하는데 이 중요한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국민 동의없이 합의해준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에 김대통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론에 관한 용어는 그렇지만 남북연합제와 대단히 유사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는 남북연합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군철수 주장을 철회하고 국가보안법은 남쪽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한 것은 큰 성과라고 봐야 한다."고 하였다.

또 김대통령은 "북한은 미군철수, 국보법 폐지 주장을 이미 철회했다. 요즘 미군철수 주장 등은 북한의 국내용 주장이라고 한다. 연방제는 외교군사권을 중앙정부에 일임하는 것인데, 낮은단계 연방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연방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진전상황을 야당과 협의해 하겠다. 어쩌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이다."고 말했다.

남북문제에 대한 시각차이를 좁히지 않는다면 여야합의에 의한 대북관계 추진은 불가능하다. 특히 '국민투표'를 거쳐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로 반드시 형성되어야 한다. '연방제 통일방안'과 '미군철수', 이 두가지 쟁점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6.15 남북공동선언문 합의문 2항에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문에 명시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한 구체적 윤곽이 6일 김일성 주석 고려연방공화국 창립방안 20돌 평양시 보고회에서 드러났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 기구를 내오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안국장은 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91년 김주석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방안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현존 남북정부의 권한으로 외교,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를 언급한 것은 사실상 완전한 주권국가인 두 정부가 통일을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수정한 것이다.

80년에 나온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를 상정하고 있다. 이것은 '중앙정부가 국방과 외교권을 갖고 남북은 각각 별개의 지방정부로 편입되는 형태'를 의미하고 이를 위해 주한미군철수가 가장 먼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1국가 2정부', '주한미군철수' 등은 남한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고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에 근본적인 걸림돌이 되어왔던 사안이다.

남한에서 제안했던 '남북연합제' 방안은 정치학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국가연합'이며,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절에 확립된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골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에 근거할 경우에는 그 1단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의 3단계이고 김대중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국가연합→연방→통일'의 3단계이다.

남북공동선언문에 명시된 '남측의 연합제안'은 대체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남북연합단계를 의미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북측이 말하는 '민족통일기구'는 아직 그 개념이 명확치 않다.

다만 이 기구가 남측이 연합단계에서 구성하고자하는 남북 정상회의, 각료회의, 국회회의와 큰 틀에서는 유사할 가능성이 있으나, 아마 북한이 말하는 '민족통일기구'는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와 같이 남북의 정부와 정당, 단체를 포괄하는 형태로 제시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인다. 이 정부와 민간을 포괄하는 연석회의 형태는 48년 남북협상의 기본형식이었고 북한이 줄곧 공세적으로 제안해온 내용이었다. 이번 노동당 창건 55주년에 남측의 정당, 종교, 단체를 초청한 주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북한의 미군철수 주장

김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주한미군철수를 철회했다'고 표현하였고, 또 지난 9월 3일 TV3사 보도본부자들과의 특별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를 "그간 북한이 주장해온 '미군철수', '연방제 수락' '보안법 철폐'의 3대 남북관계 장애가 해소되었다는 점이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는 데 있다고 하였다.

과연 북한이 미군철수를 철회하였을까?
북한이 전쟁 이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한의 '주한미군 용인론'에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주한미군이 대북용이 아닌 동북아 '평화유지군'적인 존재로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북미관계의 적대성의 청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한미군의 중립화'론은 남한이나 미국 측에서도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는 '주한미군 지위변경론'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러한 북한의 '주한미군 중립화론', '용인론'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화해분위기를 타면서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6월 19일 미국은 경제제재 완화 이행조치를 발표하고 북한을 더 이상 '불량배 국가(rogue state)'로 부르지 않겠다고 밝히자 북한은 6월 21일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조치가 유효하다는 선언으로 화답함으로서 북-미간의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북미 화해분위기 조성과 더불어 미국 내에서는 37,000명의 주한미군과 47,000명의 주일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안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주한미군 군사지도자들은 최근의 미군주둔에 대한 시위에 대해 '이는 반미감정이라기 보다 반주한미군 정서'로 보아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원하고 있지만 미군이 자국영토 내에 주둔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보고 있다.

또 미 국가정보위원회 한 보고서에서는 미 주둔군에 대한 미국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이 정서가 반미정서로 고조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미국 의원들의 일부는 미국의 국방비 지출이 너무 높다고 주장하고 국방비 삭감을 위해 미 군사기지 일부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미 보수성향의 싱크탱크 재단인 헤리티지 재단보고서에 의하면 6월 남북정상회담이후 10만 명의 아시아 주둔 미군, 특히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주둔한 3만7000명에 대한 철수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주한, 주일 미군의 성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이 재단의 워첼 소장은 한국과 일본의 미군은 주둔국 국민들에 의해 용납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해당국과 전통적인 군사접촉은 물론 재난구호, 비전투 구조활동, 지뢰제거, 평화증진, 밀수와 마약 밀매 방지 등 비전투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또한 미 보수파 거두인 헬름스 미상원 외교위원장은"한반도에 주둔중인 미군 3만7000명의 철수문제를 고려할 때가 됐다"고 정상회담 직후 주장하였다.

뿐만아니라 한반도 해빙무드는 클린턴 미대통령과 행정부가 북한과 이란 등 '불량배 국가'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추진해왔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추진 결정연기에 일조하였다.

또한 미국내의 군사전략의 변화뿐만아니라 미군의 한강의 독극물방출사건, 매향리 미군사격장 피해등으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세계여론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남북회담 이후 변화해가는 북-미 해빙무드로 조명록차수의 방미가 이루어졌고, 북-미관계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분명하다.

통일문제전문가인 이승환 민화협 사무처장은 "이러한 흐름을 볼 때 북한의 통일방안과 미군철수에 대한 입장변화는 연방제정신을 담은 현실적인 제안의 변화, 수정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평가하였다.

[hkp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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