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자 극단 선택.. 올해들어 4명째
피해자대책위,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요구 “제발 살려달라” 절규
여야 전세보증금 반환대책 두고 힘겨루기 “형평성 어긋나 VS 사회적 재난”
민주 정의, 16일 합의 안될 경우 25일 본회의 단독처리 시사

피해자대책위,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요구 “제발 살려달라” 절규 [사진=연합뉴스]
피해자대책위,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요구 “제발 살려달라” 절규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빌라에서 30대 여성 이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빌라와 오피스텔 등 주택 1천139채를 보유하고 전세를 놓다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빌라왕' 김모 씨 사건의 피해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를 포함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는 4명이나 된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 안타까운 죽음이 또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의 조속한 해법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관계부처 고위 인사들에게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 상황과 연착륙 방안에 대해 보고 받고 ‘전세 사기·역전세’ 등으로 피해를 받는 주거 약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찾아 전세 피해자 지원 대상 확대 등 제도개선을 제안했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단계별 제도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한 데 이어 국회에 직접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김 지사는 "전세 사기 문제로 많은 분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앞으로 부동산 경기에 따라 피해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경기도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방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구조적인 부분이 있어 대책을 중앙정부에 촉구하고 국회에 건의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민기 위원장은 "경기도가 전세 피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주신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전세 피해 문제는 세입자 개개인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되고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전세사기 대책 마련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천 미추홀구 ‘빌라왕’의 사망을 계기로 불거진 전세사기 피해는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건축왕’ 일당에게 피해를 받은 세입자는 533명으로 피해 규모는 430억원에 이른다. 이것만도 큰 피해 규모이지만 아직까지 ‘터지지 않은’ 전세사기 피해자는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연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조속한 구제책 마련을 촉구하는 절규가 울려퍼지고 있다.

피해 대책위,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요구하며 “제발 살려달라”

종교·노동·주거·복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 대책을 호소하며 정부와 여당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여당에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공공의 피해주택 매입 ▲공공의 선구제 후회수 방안(보증금채권매입) 등이 포함된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8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11일에는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보증금 구제 방안이 포함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모두 흰 국화를 들었다. 손팻말에는 '벌써 4번째 희생자.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오늘 4번째 희생자 소식이 기사로 쏟아지면서 오픈카카오톡방의 피해자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눴다"며 "피해자들이 계속 불안과 절망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회견문을 통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진짜 살고 싶다"며 "제발 당리당략 말고 전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여야는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지난 4월 27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김정재 의원 대표발의)을 발의했고, 민주당은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조오섭 의원 대표발의)을 마련했다. 정의당도 ‘임대보증금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심상정 의원 대표발의)을 내놓은 상황이다. 

그러나 의견 차이가 커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 1일, 3일, 10일 세 법안을 병합심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전세 보증금 반환 대책 두고 여야 힘겨루기.. 민주당 단독처리 시사

가장 큰 쟁점은 보증금 반환 대책이다. 

정부·여당은 국가가 ‘사기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해당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이후 LH가 우선매수권을 매입한 뒤 장기 임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야당의 법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먼저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인 뒤 추후 구상권 청구를 통해 비용을 보전하는 ‘선(先) 지원·후(後) 구상권 행사’를 담고 있다. 피해자단체들의 요구와 동일한 방식이다. 

지난 11일 여야 원내대표는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전세 사기 특별법 처리를 합의한 만큼 16일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가 마지막 협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날 회의에서 미반환 전세 사기 보증금을 사후정산 하는 내용의 절충안을 정부·여당에 최종 제안하고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경·공매 등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고, 임차인에게 이를 사후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기존 야당 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 매입 기관이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피해자에 먼저 돌려주고, 추후 경매 등을 통해 비용을 회수하는 '선(先)지원·후(後)청구' 방식이었다.

절충안에는 이 밖에도 전세 사기 피해자 인정 범위 확대, 최우선 변제제도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민주당은 이날도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25일 본회의서 단독 처리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이 일관되게 피해보증금 보전 대책을 내놓은 만큼 정부 대책이 없으면 이를 수용하면 되지만 계속 합의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16일까지 정부·여당이 전향적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정의당과 협의해 절박한 피해자의 요구에 답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표도 “벼랑 끝에 내몰린 국민의 삶에 더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 정부·여당이 다음 국토위 소위가 열리는 16일까지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길 바란다”며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피해자들의 절규에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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