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수사대장 "위법한 지시라고 다들 느껴" "수사자료 회수, 자기들 발목 잡을 것"
해병대 예비역 400여명, 진상규명 촉구 집회 "정부는 국민에 대한 항명을 멈추라"
박 대령측 "군 검찰, 별건 수사 시도하고 있어".. 국방부 "사실무근"
![수사 외압 정황이 담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09/620748_422443_1147.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고(故) 채 상병 사건 사망사고 처리와 관련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항명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수사 외압 정황이 담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녹취가 공개됐다. 이른바 윗선의 수사개입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건 진상규명과 박 대령의 원대복귀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4일 김 사령관과 박 전 단장의 부하인 해병대 중앙수사대장(중령)이 지난 달 2일 오후 9시 48분부터 4분 42초간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날은 박 대령이 임성근 해병대 사령관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의 수사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후 보직해임된 날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이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으로 넘겼으며, 거짓말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박 대령에게 군 형법상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해당 통화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나도 한 3시간 반, 4시간 정도 조사받고 왔다"며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어. 정훈이가 답답해서 그랬겠지"라고 말했다.
즉, 김 사령관이 수사단 수사 결과를 신뢰했고, 박 대령의 수사 결과 이첩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어 김 사령관이 "정훈이가 국방부 법무관리관하고 얘네들 통화한 거 다 있을 거 아니야? 기록들 다 있지?"라고 묻자 중앙수사대장은 "네 맞습니다. 기록도 있고, 그 통화할 때 저하고 지도관하고 다 회의 중간에 법무관리관이 전화 오고 해서 옆에서 다 들었다"며 "너무 이렇게 외압이고 위법한 지시를 하고 있다라고 다들 느꼈다"고 답했다.
이에 김 사령관은 "결국 그것 때문에 본인(박 대령)이 책임지겠다는 거 아니야"라며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거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당시 해병대 관계자들이 "국방부가 위법한 지시를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 향후 윗선에서 박 대령을 항명으로 몰고 갈 것도 예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수사대장 "위법한 지시라고 다들 느껴" "수사자료 회수, 자기들 발목 잡을 것"
이들은 군검찰이 경북경찰청으로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회수한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군검찰이 법적 근거 없이 수사 결과를 회수한 부분을 지적했다.
중앙수사대장이 통화에서 "지금 들어보니까 경찰에 넘긴 기록도 국방부에서 받아 가겠다고 무리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사령관은 "아 그래? 국방부에서 받아 가려고 그런대?"라고 되물었다.
중수대장이 "국방부에서 만약에 그 기록을 가져가는 순간, 아마 자기들 다 발목 잡을 겁니다"라고 하자 김 사령관은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없이 했으니까 됐어. 벌어진 건 벌어진 거고, 뭐 어떻게 보면은 무거운 짐 다 지고 가지"라고 말했다.
한편 해병대는 녹취록이 공개된 후 입장을 내고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 중앙수사대장과 통화한 이유는 전 수사단장이 보직해임되자 동요하고 있는 수사단원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통화한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차단했다.
반면,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김 사령관이 박 대령의 이첩 행위가 본인 동의 하에 된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앞서 군 당국이 이 장관 지시로 채 상병 사건 조사를 해병대 수사단에 대서 국방부조사본부로 이관한 데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거의 없다"며 "원래 관할인 해병대 수사단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해병대 예비역 400여명, 진상규명 촉구 집회 "정부는 국민에 대한 항명을 멈추라"
이처럼 윗선의 수사개입 의혹이 갈수록 불거지면서 사건 진상규명과 박 대령의 원대복귀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지난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해병대 빨간티를 입은 예비역 400여명이 참여했다.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는 이날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이를 방해하는 세력의 일벌백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채 상병의 유족에게 진상규명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방부·정부 당국의 행태를 좌시하지 않겠다. 진상규명과 박 대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회는 국정조사와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외압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령과 동기인 김태성 해병대 81기 동기회장은 "전역 후 전국 각지에 모인 해병대들이 오늘처럼 모인 것은 해병대 창군 이래 처음일 것"이라며 "채 해병 진상규명과 군 수사권 보장은 우리의 염원이다. 박 대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사건에 외압을 가한 자들에 대한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병대 예비역 김태완씨도 "채 해병의 사망 사건은 군 신뢰도를 저하하는 사건이다. 군 조직은 사기로 좌우되는 집단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비역 전원철씨는 "해병대 수사단 수사가 국가안보실의 입맛에 맞게 재단됐다. 이런 군대를 국민이 믿을 수 있겠나"라며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고 ‘누구의 혐의를 빼라’고 지시한 자의 죄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에 대한 항명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령측 "군 검찰, 별건 수사 시도하고 있어".. 국방부 "사실무근"
한편, 군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정훈 대령 측은 군검찰이 박 대령에 대한 별건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수사에서 김동혁 검찰단장 등을 배제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박 대령 측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소재 국방부 종합민원실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수사지휘요청서를 제출했다.
박 대령 측은 "최근 해군 검찰단 등 복수의 군 수사기관이 '피의자(박 대령)가 처리한 사건'들 기록을 불법적으로 열람하고 있다고 한다"며 "이에 대해서도 강력 항의하니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이 장관에게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담당 군검사가 박 대령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과거 다뤘던 사건들과 달리 채 상병 사건은 조사기록을 전부 경찰에 넘겼다'는 취지로 질문해 "황당했다"며 "이는 (과거 사건 기록도) 전부 다 보고 있단 것"이라고 말했다. 군검찰이 박 대령에 대한 "별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채 상병 사고 처리과정에서) 해병대 수사단에 문제가 있었다면 해병대 검찰단에서 다루는 게 맞다"며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건 "윗선" 개입에 따른 "청부 수사"라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수사팀을 교체해 (박 대령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국방부 검찰단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중"이라며 "(박 대령 측) 변호인이 주장하는 별건 수사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전 대변인은 "(박 대령 측) 변호인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별건 수사를 주장하는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