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참패 자초하는 윤 대통령의 자충수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하는 광경 자체가 놀랍다. 이전까지 이준석,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물러나게 되는 과정에서도 ‘윤심’이 작용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래도 그 때는 이렇게까지 ‘윤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이관섭 실장이 윤 대통령의 뜻임을 명확히 하며 사퇴할 것을 전했다”고 한다. “아울러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 논란 대응에 대한 윤 대통령의 섭섭함도 전달했다”고 했다. “김 여사 관련 현안에 대응하는 한 위원장에 대한 섭섭함과 김경율 비대위원의 발언을 제지하지 못한 것에 불쾌감을 전했다”는 얘기도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정보통신기술 전문기업 더비즈온에서 '함께하는 AI의 미래' 민당정 간담회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401/631945_435056_28.jpg)
검사 시절, 그리고 법무부 장관 시절 평생 ‘부하’였던 한동훈이 감히 김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말한데 대해 그만큼 격분했나 싶다. 게다가 김 여사 얘기를 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교한 김경율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공천하겠다며 손을 들어주었으니 더 괘씸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난들 총선을 80일 남겨놓은 시점에 덜컥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면 국민의힘이라는 여당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 때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참패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혔다. 윤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한 위원장이 물러나는 장면이 전개될 경우 아마도 대통령의 당무개입에 대한 민심의 역풍이 불게 될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서 추진 중이었던 현역 의원의 교체를 포함한 공천 방향도 결국 영남권 중진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도로 영남당’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여당이 이렇게 다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22대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달라지지 않는 정권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보여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재현될지 모른다.
여당이 참패하면 22대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열려있다. 현재 야당의 분위기를 보면 윤 대통령도 탄핵 소추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의 참패는 윤석열 정부가 식물 정부가 됨을 의미한다. 누구보다도 윤 대통령이 가장 참담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서운하고 화가 난다 한들, 이렇게 총선을 치러야 하는 여당을 흔들어 놓는 개입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저 화를 참지 못해서 던지는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쳐질 뿐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명품백 논란을 '정치공작'으로 규정하는 것은 "TK(대구·경북)의 시각"이라고 말했던데 대해 사과하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윤심’이 한동훈에게서 떠났음이 알려진 이상 한 위원장의 앞길은 훨씬 험난하게 됐다. 당장 공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는 현역 의원들이 반발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용산의 요구는 국민의힘의 변화 움직임을 막는 장애물이 된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 위원장이 용산이 세워놓은 장애물을 넘어서서 홀로서기에 성공한다면 그의 정치도 새롭게 평가받을 기회는 열려있다. 한 위원장은 22일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거듭 밝혔다.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결국은 누가 민심을 등에 업느냐 하는 문제이다. 여야 사이에서의 경쟁도 그러하지만, 지금처럼 대통령과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동훈이 총선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버틴다면 총선 성적표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여권 내부의 권력 갈등이 새로운 관전 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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