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김건희 여사·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또다시 터졌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동티가 났다. 허위이력 의혹과 유튜브 매체와의 녹취록 파문. 민심이 돌아서자 보수는 경악했다. 마지못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 국민은 ‘조용한 내조’로 받아들였다. 큰 고비를 넘긴 남편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래서 영부인 담당, ‘제2 부속실’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잊히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취임 이후 여사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사진 외부 유출, ‘봉하마을’ 지인 동행 등. 이것도 모자라 첫 해외순방 전용기에 민간인 지인을 태웠다. 관저 공사에 여사와 관련된 업체의 수의계약 의혹까지 불거졌다. 국민청구로 감사에 나선 감사원. 이제껏 헛물만 켜고 있다. 검찰도 “여사님” 눈치 보긴 마찬가지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소환 조사도, 그렇다고 종결도 하지 않았다. 그저 냉가슴만 앓고 있다.

아슬아슬하던 ‘여사 리스크’ 뇌관이 결국 터졌다. 지난해 11월 말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명품 가방 수수 동영상. 국민은 보고서도 눈을 의심했다. 영부인의 은밀하지만, 노골적 일탈. 정말 말문이 턱 막혔다. 민심 이반 조짐에 보수 언론이 먼저 회초리를 들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대통령 부인이 검증되지 않은 속칭 ‘듣보잡’ 인물과 연락을 취하고, 사적 공간에서 만나 명품을 건네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쇼킹하다.”(<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2023년 12월2일) 그래도 대통령실은 모르쇠였다. 엿새 뒤 <동아일보>가 직격했다. “이 나라 보수는 ‘김건희 리스크’를 더 이상 안고 갈 수 없다.” 이기홍 대기자는 칼럼에서 나름의 처방을 주문했다. “김 여사는 하루빨리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택 등 사가(私家)로 거처를 옮겨 근신해야 한다.” 이 주장에 즉각 왕조시대 용어가 소환됐다. 폐서인(廢庶人). 조선시대 왕후나 세자빈이 직위를 빼앗긴 뒤 사가로 쫓겨날 때나 쓰던 말이다. 극약처방에 가까울 정도로 여사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이런 뜻이었을 게다.

지난달 말 시작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번엔 핵폭탄급 뇌관이 폭발했다. 정말 뜬금없는 ‘김건희 문자’ 사건이다. 지난 총선 때 비대위원장을 지낸 당권주자 한동훈 후보. 명품 가방으로 토라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여사가 직접 보낸 사과 의향 메시지를 무시했다는 게 요지다. ‘친윤 후보’로 불리는 원희룡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먼저 배신자 프레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인간적 예의가 아니다.” 이어 한동훈의 “읽씹” 탓에 총선에 졌다고 몰아쳤다. 급기야 “총선 고의 패배”까지 들고나왔다. 한동훈도 맞받아쳤다. 느닷없는 여사의 문자 유출. 권력의 불순한 전대 개입으로 비판했다. 이어 당시 문자의 진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건희 여사도 사과할 의사가 없었다.” 공방은 졸지에 진위 논란으로 이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여사가 보낸 5건 문자 전문이 세상에 까발려졌다. 싸움은 오히려 더 격화됐다. 친윤 측은 문자 속 “위원장 의견을 따르겠다”는 대목을 강조했다. 당연히 한동훈의 불통과 착오를 비난했다. 반격도 만만찮았다. 한동훈 역공 포인트는 문자 곳곳에 드러난 “그럼에도”라는 전제. 이를 부각하며 사과보다 면피성을 부각했다. 양측의 공방에 나경원, 윤상현 후보까지 가세하며 난타전이 벌어졌다.

지난 2일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은 이번 전대가 ‘사각(死角)의 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 “전당대회냐, 분당대회냐”, “막장 치닫는 당권 경쟁”, “자폭 전대” 등.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아마도 가장 뼈아픈 지적은 지난 10일 <경향신문> 1면 기사일 듯싶다. “문자에 갇힌 여당”이란 뉴스 분석 기사의 부제를 한번 보자. “한동훈 배신자, 원희룡 기회주의자, 대통령 소인배, 김 여사 측천무후”. 여권 관계자는 “다 망했다”며 이번 문자에 연루된 인사들의 이미지를 이렇게 분석했다. 한, 원, 두 사람은 그렇다 쳐도 대통령 부부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실 여사 문자 속엔 대통령의 격노가 비교적 또렷이 떠오른다. 부적절한 아내 처신보다 여당 비대위원장 대응에 분노하는 모습 말이다. 옛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분명 ‘군자’의 태도는 아니다. ‘측천무후’로 그려진 여사는 어떨까. 당나라 황후에서 스스로 황위에 올랐던 여제(女帝). 좋게는 여걸로, 나쁘게는 악녀로 불리기도 한다. 아마도 남달랐던 그녀의 권력욕 또는 ‘정치적 오지랖’. 이를 여사에 빗댄 것으로 보인다.

여사가 한동훈에 문자를 처음 보낸 건 지난 1월 15일. 명품 가방 문제가 불거진 지 한 달 보름 만이었다. ‘폐서인’급 자성을 촉구하는 비난 여론을 한참이나 깔아뭉갠 뒤였다. 물론 여당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당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그것도 다섯 통이나 문자를 보낸 대통령 부인. 결코 적절한 처신이 아니다. 무엇보다 답이 없다는 핑계로 사과는 끝내 ‘패싱’해버렸다. 애초부터 진정성이 없었다고 여론이 판단하는 이유다. 이 와중에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대통령과 비대위원장 공개 충돌이다. 여사의 사과 문제가 빌미였다. 총선 참패는 이미 여기서 잉태된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사는 발뺌했다고 한다. 최근 광운대 특임교수 진중권이 폭로한 57분 통화내용. 선거 직후 걸려 온 전화에서 “주변 강권으로 사과를 못했다”고 변명했다.

이번 파문으로 전대에서 정책과 비전, 가치 경쟁은 사라졌다. 문자 속 ‘댓글팀’ 문구는 또 다른 파장을 자아내고 있다. 진짜 궁금한 대목은 왜 이 시점에 여사 문자가 불거졌느냐는 점이다. 이른바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을 허물기 위한 것인가.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정치공작이다. 당장 문자를 받은 쪽이 펄쩍 뛰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문자를 보낸 여사 측은 침묵하고 있다. 무수한 억측만 난무하고 있다. 누가 이기든, 전대 후유증이 깊고 오래갈 것이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김건희 리스크’. 문자 파동 속에 신형 뇌관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채상병 사건과 관련한 전 해병대 1사단장 임성근 구명 의혹. 새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여사가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 ‘콘트롤 타워’였던 투자사 대표다. 극구 부인하지만, 녹취록은 그의 역할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초 약속대로 여사가 ‘조용한 내조’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뭐라 호가호위하든, 세상이 귀라도 기울였을까. 여사의 잘못된 처신에서 비롯된 ‘폐서인’ 여론. 그러나 ‘측천무후’로 인식된 여사의 대처. 하늘과 땅만큼이나 ‘극과 극’이다. 이 간극을 서둘러 메워야 한다. 이걸 못하면 전대도, 정권도 말짱 도루묵이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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