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진료 정상화·불법의료 근절 등 요구하며 29일 파업예고
다음달 코로나 대유행설에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계 전반 한계 도달
의대정원 증원 갈등 속 전공의 부족…정부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 없어
유승민 "정부가 살리겠다던 응급의료부터 붕괴…대통령 해법 내놔야"
민주당도 "윤 대통령이 일으킨 의정갈등…결자해지는 요구 아닌 경고"

지난 2월 정부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정부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박상현 기자] 어쩌면 지금까지 겪었던 의료공백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젠 간호사 등이 소속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까지 파업을 예고했다.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상황에서 한계를 느낀 의료계가 붕괴 일보 직전에 도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달 코로나 대유행설까지 퍼지고 있다. 이달초부터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까지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았을 정도로 유행세가 심상치 않다. 국민이 명절을 보내는 한가위가 있는 다음달에 코로나가 급속하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상 최악의 의료대란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은 시한폭탄과 같은 의료대란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여전히 의정갈등의 기폭제가 된 의대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 한발짝 물러섬이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회 역시 채상병 특검법 등으로 인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2월 정부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 및 환자 등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정부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 및 환자 등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투표 가결…사용자측과 조정 실패땐 29일 동시파업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61개 병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한 결과 91%의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보건의료노조 설명에 따르면 61개 사업장 총 2만9705명 가운데 81.66%에 해당하는 2만4257명이 투표에 참여해 2만2101명이 찬성했다. 찬성률이 무려 91.11%에 달한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이처럼 높은 투표율과 찬성률에는 6개월 이상 지속된 의료공백 사태에 인력을 갈아 넣어 버텨온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가 담겼다"고 해석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 ▲불법의료 근절과 업무 범위 명확화 ▲주4일제 시범사업 실시 ▲간접고용 문제 해결 ▲총액 대비 6.4%의 임금 인상 등의 요구조건을 걸고 사용자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다만 보건의료노조는 동시 파업을 하더라도 환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는 필수인력을 투입해 의료업무가 올스톱된다는 것만큼은 막는다는 방침이다. 또 환자, 보호자 안내와 설명 등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의료기관에서 활동도 펼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예고는 장기간 계속됐던 의료공백으로 인한 업무 과다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집단사직한 가운데 그동안 간호사들은 전공의의 공백은 물론이고 의료현장을 지키다가 피로도가 극에 달해 사직한 교수 등 의료진의 추가 이탈로 생긴 공백을 메워왔다. 

특히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집단 사직해 의료공백이 커진 상황에서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다른 보건의료 노동자까지 파업에 나설 경우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생각하기도 싫은 의료대란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 측은 "병원 측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강요된 강제 연차휴가 사용, 무급 휴가, 무급 휴직, 원하지 않는 응급 오프, 부서 이동 등의 불이익 앞에서도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현장을 지켜왔다"며 "의사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단 벼칠 교육으로 진료지원(PA) 간호사 업무를 하며 몇 배로 늘어난 노동강도에 번아웃되면서 버텨왔다. 더이상 의사 업무를 체계화된 교육 과정과 자격 요건도 없는 일반 간호사들에게 떠넘겨 의료사고 불안에 시달리는 불법의료로 내몰지 말라"고 밝혔다.

또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는 노조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교착상태에 빠진 노사교섭 해결을 위해 공공, 필수, 지역의료를 살리고 왜곡된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 올바른 의료개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 제도, 재정적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22일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 코로나19 감염 환자 증가 등으로 인한 마스크 착용 권고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22일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 코로나19 감염 환자 증가 등으로 인한 마스크 착용 권고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폭염으로 인한 온열환자 급증에 코로나까지…추석까지 겹치는 대란까지

가장 큰 문제는 응급실이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응급환자가 제대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은 오래 된 일이다.

이미 올 여름 최악의 폭염으로 인해 온열질환 환자가 급증하면서 가뜩이나 의료공백으로 응급실이 포화인 가운데 과부하가 걸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 재유행 때문에 개학을 맞은 일선 초중고에는 특별 방역 점검을 진행할 정도다. 

이에 대해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이화여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는 지난 23일 SNS을 통해 "현재 내 업무는 응급 진료 체계 붕괴의 상징이다. 나 혼자 권역응급센터에서 근무한다. 여기는 하루 60명 정도를 진료하는 서울 한복판 권역센터인데 당직마다 의사는 나 혼자"라며 "응급실 환자는 이전에 비해 줄었지만 단순 열상이나 안과, 정형외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등 마이너 환자나 명백한 경증을 제외한 숫자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은 사실상 줄지 않았다. 진료 어무 총합은 비슷하다"고 토로했다.

또 남궁교수는 "권역센터에서 의사의 뇌는 5개가 기본이다. 인턴 2명을 제외해도 3명 정도는 필요하다. 이전부터도 여우있게 크로스체킹할 시간 따위는 없었지만 이론상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혼자"라며 "현재 의료 체계는 시한폭탄이다. 아득바득 막아내는 내 존재가 시한폭탄을 그대로 증명한다"고 의료계의 힘든 현실을 폭로했다.

더욱 큰 문제는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폭염은 여전해 온열질환 환자 발생 숫자는 여전할 것으로 보이고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병원 문을 닫는 추석 연휴에 응급실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환자가 갑자기 몰릴 경우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들이 명절을 쇠기 위해 고향을 찾기 때문에 코로나19 확산은 가속될 수 있다.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회장과 손혜숙 부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의사집단 행동에 따른 간호사 법적 문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회장과 손혜숙 부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의사집단 행동에 따른 간호사 법적 문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 놓고 있는 정부…안철수 "의료대란 끝내려면 정부 반성이 최우선"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지난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자리에서 자신이 넘어져 이마가 8cm 찢어졌는데도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당시 김 전 상임고문은 "넘어져서 이마가 깨졌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일으켜 응급실에 가려는데 22군데를 전하해도 받아주지 않았다"며 자신이 직접 '응급실 뺑뺑이'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김종인 전 상임고문의 사례는 비단 단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미 조그만 질병으로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임에도 제대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골든타임을 넘기는 바람에 심지어 사망까지 이른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24일 자신의 SNS을 통해 "최근 위장 출혈 증상을 보여 제발로 1000병상이나 되는 대형병원을 찾았던 환자도 지혈해줄 소화기내과 의사가 없어 치료가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사망했다"며 "위장 출혈은 대부분 내시경으로 쉽게 응급처치가 가능하다. 이런 피해자는 이런 사람뿐이 아닐 것"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권, 특히 의정갈등의 주체인 정부와 여당에서 그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SNS에서 "의료대란을 끝내려면 정부의 반성이 우선"이라며 "개학을 앞둔 8월 마지막 주에 코로나19 환자는 35만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질병청이 예측했음에도 지난 16일 의대 교육 점검 국회 청문회를 보니 코로나19 재유행 대응은 물론 의료 대란을 넘어 의료 붕괴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또 안 의원은 "정부는 이제까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의사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 증원이라는 정책적 판단을 과학적으로 결정했다는 입장이었고 회의록도 곧 공개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대학별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한 배정위는 누가 참여했는지도 모르고 어떤 근거로 정원이 배정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독재국가에서나 봄 직한 밀실행정으로 의대 증원 및 의료개혁의 정당성이 뿌리부터 붕괴되고 있다"며 "의대생과 전공의가 돌아와 더이상의 파국을 막으려면 우선 정부가 의대 증원 과정에서 잘못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의대 증원에 합의하되 1년 유예하고 정부, 의료계, 전문가들이 함께 모인 공론화 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의 반성과 결단이 없으면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세계적 수준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지난 24일 SNS에서 "정부가 살리겠다던 필수, 응급의료부터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모두 심각한 상황"이라며 "의대정원을 늘려 10년 후 의사 1만명을 더 배출할 것이라더니 당장 1만명 이상의 전공의가 사라져 대학병원들이 마비되고 의대생 집단 휴학으로 내년부터 의사 공급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또 유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대통령은 총선 직전인 4월 1일 2000명을 늘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더니 그 날 이후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도 한마디 말이 없다. 진단도 틀렸고 처방도 틀렸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지금 꼬일대로 꼬여버린 의료붕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대통령 뿐이다. 한 사람의 고집과 오기 때문에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대로 흘러간다면 그 파국의 결과는 끔찍할 것이며 국민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추궁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수습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대통령이 조만간 연금개혁 등 4대 개혁을 발표한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의료붕괴를 막아낼 해법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현실로 다갸온 의료붕괴 사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예고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의료공백을 정상화시켜 달라는 요구로 필연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를 대신해 노동강도는 높아졌지만 환자가 줄어 경영난에 처했다며 임금 체불과 구조조정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은 일대로 더 하면서 정책 실패의 벌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셈"이라며 "대체 아픈 국민들은 언제까지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느냐. 무능한데다 무관심한 윤석열 정부의 방치에 시달려온 간호사들이 또 언제까지 극한 노동과 불법 의료에 내몰려야 하느냐"고 일갈했다.

또 강 원내대변인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확산 중인데 정부는 또 대책 없이 한가하기만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의정 갈등에 모든 국민이 참을만큼 참았다. 의료 공백이 불안을 넘어 공포스러울 지경"이라며 "여권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대통령의 결자해지는 요구가 아닌 경고다. 힘 대결해서 당기는 쪽이 아니라 해결을 내놓는 쪽이 승자다. 결자해지의 한끝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 쥐고 있음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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