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림대 도헌학술원 주최로 ‘한국 민주주의 구출, 적대 정치의 청산과 개헌 제안’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왼쪽부터 송호근 도헌학술원장,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염재호 태재대 총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사진=한림대 제공]](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3/685735_495656_472.jpg)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지난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국내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림대 <도헌 학술원> 주최의 ‘한국 민주주의 구출하기: 적대 정치 청산과 개헌 제안’ 심포지엄이었다. 제목이 말하듯, 현 시국을 위기로 인식해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보도에 따르면 헌법학계와 정치학계의 원로 학자들은 12.3 비상계엄으로 이른바 ‘87년 체제’의 시한이 다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권력 분산 개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지방분권 등이 거론됐다. 백화제방의 제안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은 승자독식 혁파였다. 정확히 얘기하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가 타깃이다. 과거 정당 대표, 국회의장, 총리 등 정치원로가 주도하는 개헌촉구 서명운동도 마찬가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그만큼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 실상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현재의 탄핵 국면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착각하지 마시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의 ‘줄 탄핵’이다. 이를 한번 들여다보자. 최근 양상은 정말 이례적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3대에서 20대 국회까지, 32년간 탄핵안 발의 건수는 모두 18건. 이중 가결 케이스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대통령 노무현, 박근혜 탄핵안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1대 국회 중반부터 현 22대까지, 불과 3년 동안 완전 딴판이다. 모두 31건이 발의돼 13건이 통과됐다. 이중 선고가 내려진 8건 모두 ‘줄 기각’이었다. 이 기간 탄핵 주도 세력은 제1당 민주당.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욕먹을 소지는 충분하다. 임명된 지 이틀밖에 안 된 방통위원장과 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 탄핵이 대표적 사례. 행정부 일탈에 대한 견제보단 정략적 셈법이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 잡자고 칼 들고 설치는 꼴이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현상과 결과에 앞서 먼저 따져볼 대목이 있다. 야당 공세에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 윤석열의 책임이다. 0.73%,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집권했다. 그런데 왕처럼 군림했다. 취임 후 민주당 대표 이재명과 밥 한 끼는커녕 차 한잔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을 동원해 대선 경쟁자였던 그를 탈탈 털었다. 반면 대선 기간 불거졌던 자신을 둘러싼 의혹은 그냥 뭉개 버렸다. 이를 비판하는 야당, 그것도 단독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을 아예 ‘패싱’해버렸다. 당연히 대통령 공약안의 어떤 개혁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정의 파행과 실패는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 참패로 이어졌다. 그 결과, 훨씬 압도적 여소야대가 됐다. 그래도 끝내 국회와의 대화와 협력을 거부했다. 대통령 자신과 자기 아내를 겨냥한 특검법 등에 대해 거부권 남용으로 맞섰다. 실정 비판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야당이 반대할 만한 인사를 ‘콕’ 집어 발탁했다. 일부러 야권 부아를 돋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야당은 최후의 정치적 무기를 꺼냈다. 그게 바로 탄핵 소추권과 예산 심의권이었다. 실제 줄 탄핵과 정부 예산 삭감이 현실화하자, 말 그대로 윤석열은 ‘빡쳤다’. 이른바 비상대권, 계엄 선포였다. 그것도 모자라, 군대로 국회 권한 박탈을 시도하는 내란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가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었다. 와중에 대한민국은 존망 위기로 내몰렸다.
윤석열의 실패는 승자독식 ‘끝판왕’의 귀결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여당 내에서조차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 이걸로 국내 석학들이 외쳤던 ‘적대 정치 청산’을 이룰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승자독식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소선거구 제도다. 지난해 총선의 지역구 투표를 한번 들여다보라. 민주당은 50.5%, 국민의힘은 45.1%를 얻었다. 두 당의 득표율 차이는 5.4%. 의석수론 민주당이 161석을, 국민의힘이 90석을 차지했다. 1.8배의 차이다. 서울 지역으로 국한하면 더 어이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득표율 차이는 5.94%. 전체 48석 중 민주당이 37석을, 국민의힘은 11석을 얻었다. 무려 3.4배 차이다. 한 지역구에서 단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반면 낙선한 후보를 찍은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 탓이다. 민주당은 여기다 위성 비례정당 의석까지 합쳐 175석을 차지했다. 군소 야당 몫까지 포함해 야권은 192석 압승을 거뒀다. 21대 총선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8.4%. 의석수는 거의 2배(163 대 84)로 벌어졌다. 따지고 보면 최근 민주당이 줄 탄핵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도 소선거구제 덕분이었다. 만약 표심대로 의석수가 반영되는 제도였다면 민주당은 겨우 단독 과반(150석)을 넘겼을 것이다. 대통령을 제외한 공직자 탄핵 정족수는 재적 과반 의석의 동의. 그래도 민주당 맘대로 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필리버스터 통과 기준 180석의 벽에 번번이 막혔을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에선 소선거구제 혁파를 외치지 않는가. 일단 텃밭 격인 영남에선 지역구 독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여기다 1등만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가 거대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적대적 공생관계’. 문제는 공생이 의석 나눠 먹는 것으로만 그친다는 점. 결국 양당 체제 속에서 “너 죽고 나 살기”식 적대 정치만 남았다. 이를 깨부수지 않고선 ‘한국 민주주의 구출’은 요원하기만 하다. 윤석열의 시대착오적 계엄과 국헌문란은 탄핵으로 심판대에 올랐다. 이를 낳았던 근본 원인, 승자독식 정치구조. 이젠 이마저도 타도 대상이 됐다. 실제 국민적 공감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부각 되는 건 권력구조 개헌뿐이다. 내란 대통령 단죄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승자독식의 정치적 ‘깐부’인 소선거구제의 혁파. 이게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적대 정치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차 재 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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