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베리 체제' 가동…韓, 美자동차 기준 수용,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약속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 [사진=AP/연합뉴스]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 [사진=AP/연합뉴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200여 일 만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WTO를 대체하는 새로운 무역 질서가 '트럼프 라운드'라며 관세와 제조업 보호에 기반한 '턴베리 체제'를 구축 중임을 밝혔다. 

그리어 대표는 기고에서 "브레턴우즈 통화체제와 WTO를 이어온 기존 질서가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며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WTO 출범 후 30년간 이어온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일방적인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한 뒤 각국과 무역 협상을 진행해 왔다. 이를 WTO 체제가 거치던 다자 협상에 빗대 '라운드'라고 명명한 것은 미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질서 구축 의지를 드러낸 행보다.

특히 그는 지난달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유럽연합(EU)과 합의한 무역안에 대해 "구체적인 국익에 부합하는 역사적 합의"라고 평가하며 "턴베리 체제가 확고해지며 실시간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은 가장 돈 벌기 좋은 소비시장의 매력적인 유인책(당근)과 관세라는 제재 수단(채찍)을 활용해 몇 개월 만에 WTO를 통해도 얻지 못했던 해외시장 접근권을 확보했다"고 자평했다.

이와 함께 그는 WTO의 느린 분쟁해결 절차 대신 미국이 직접 합의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불이행 시 즉시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리어 대표는 한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한국은 15%의 상호관세와 함께 미국의 자동차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개하며 "한국은 3,500억 달러를 미국 제조업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쇠퇴한 조선 산업의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제시된 내용이다.

이번 선언은 WTO 해체가 아니라 미국이 WTO 시스템을 무력화한 뒤 스스로 설계한 일방적 무역구조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명시한 선언으로 읽힌다. WTO 내 분쟁해결기구(DSB)가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규칙 기반 다자통상 체계는 이미 실효성을 잃은 상태였다.

다만 이같은 '트럼프 라운드' 전개는 글로벌 자유무역주의가 아닌 각국이 미국 우선주의에 복종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한국처럼 미국과 밀접한 동맹국에는 일정한 혜택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무역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확보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중심 무역 질서 선언은 국내외 기업들, 특히 한국 기업에 큰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대미 투자 확대와 제조업 동반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지속 가능한 전략이 되려면 미중 패권 경쟁 등 국제 질서 변화에 대응 가능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국제무역시장뿐 아니라 동맹국과의 협력 네트워크도 재정비돼야 한다. 자유무역주의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과 다자주의 원칙을 유지할 대안으로 미국 중심의 양자협상 체제를 넘어서는 교차적 대응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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