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WTO 종식...WTO 체제는 중국에 유리" "무역 불균형 해결, '트럼프 라운드'가 대안"
세계무역 98% 담당 WTO 체제 붕괴…FTA도 유명무실
전문가·정치권, '제조업 공동화' 우려…정부 "대책 마련·해외기업 유치"
여한구 "통상변화, 韓 생존문제…APEC으로 새 질서 주도해야"

트럼프 행정부가 30년을 이어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30년을 이어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를 향해 상호관세를 발효한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 대표는 30년을 이어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는 현재 WTO 체제가 중국에게 유리하다며 자유무역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로 '트럼프 라운드'를 제시했다. 

즉, 1947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을 시작으로 세계무역기구(WTO·1995년), 각국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거치며 확장된 80여 년간의 다자간 자유무역주의 시대를 모두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기존 자유무역 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무역 질서 수립을 공식화함에 따라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라운드'가 한국 경제와 산업의 질서를 뒤흔들 것이라며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막기 위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美 "WTO 종식...WTO 체제는 중국에 유리" "무역 불균형 해결, '트럼프 라운드'가 대안"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7일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와 이후 WTO 설립으로 이어진 우루과이 라운드 등 기존 무역 체제가 미국 등 일부 국가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보다 공정한 세계무역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어 대표는 기고문에서 "WTO는 경제 효율을 추구한다며 166개 회원국의 무역 정책을 규율하도록 설계된 체제지만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체제 아래 미국은 산업 일자리와 경제 안정을 잃었고 다른 나라들은 필요한 개혁을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이 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국영기업과 5개년 계획을 운영하는 중국이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나라들에서 각국의 필수적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져왔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이 일부 국가들의 '최후의 소비자'가 되면서 중국을 포함한 해당 국가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나 미국은 오히려 자국 산업이 쇠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어 대표는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는 것이 '트럼프 라운드'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과 진행한 무역 협상을 과거의 다자 무역 협상에 빗대어 '라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달 27일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옌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체결한 무역 합의를 거론하며 "미국은 외국 시장 접근과 투자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경제 및 안보 문제에 협조하며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무역 균형을 재조정하는 데 이처럼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면서 '트럼프 라운드'의 성과를 홍보했다. 

이어 "미국의 제조 역량과 노동력을 약화시킨 수십 년의 해로운 정책을 뒤집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트럼프 라운드가 시작된 지 130일도 안 된 상황에서 턴베리 체제는 결코 완성됐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체제의 구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무역 98% 담당 WTO 체제 붕괴…FTA도 유명무실

1995년 1월 1일 출범한 WTO는 개방적이고 시장지향적인 다자간 무역정책을 목표로 30년간 지속돼 왔다. 

2차 세계대전 후인 1948년 글로벌 무역질서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등장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일부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을 남발하자 8년간 이어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거쳐 WTO가 출범했다.

이전의 GATT는 제조업에 한정된 무역협정이었으나 WTO는 서비스업과 지식재산권까지 포괄했다. 특히, 국제 무역 분쟁 해결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출범 당시에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칠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포르투갈, 한국, 일본, 인도 등 76개국이 초대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WTO 출범 후 세계 무역 규모는 급성장했다. WTO에 따르면 세계 무역 규모는 1994년 4조326억달러에서 WTO 출범 첫해인 1995년 5조1640억달러로 약 20% 증가했다. 2024년에는 1995년 대비 4배나 성장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은 WTO 체제에서 큰 수혜를 입었다. 1995년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역 규모가 14.8% 늘었고, 1995년을 기준으로 10년 뒤 122.3%, 2024년에는 442% 급증했다.

현재 WTO 회원국 수는 166개국에 달하며 회원국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 이상이다. 사실상 세계 무역 전체가 WTO 체제에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WTO는 회원국 간의 무역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도 수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한국이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국은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검사 강화 및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했고, 2013년 9월에는 수입금지 대상 지역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으로 확대했다. 

그러자 일본은 한국의 수입금지는 위생 및 식물위생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즉각 반발하며 WTO에 제소했다. WTO는 1심에서는 일본의 손을 들어줬지만 2019년 4월 WTO 상소기구(최종심)는 1심을 뒤집고 한국 전부 승소 판정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다자교육 체제인 WTO가 붕괴된다면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간 한국과 미국은 FTA 관례에 따라 대부분의 수출품에 관세가 없었지만 이제는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6일 진행된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와 8월 정국진단에서 "WTO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면서 "3년 반 뒤 트럼프 임기가 끝난 후 미국 민주당 정부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관세 중독이 되면 이걸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정치권, '제조업 공동화' 우려…정부 "대책 마련·해외기업 유치"

여한구 "통상변화, 韓 생존문제…APEC으로 새 질서 주도해야"

전문가들은 WTO체제가 '트럼프 라운드'로 전환된다면 한국 경제와 산업에 적지 않은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 라운드의 핵심이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대미 투자를 늘리는 것인데 그럴 경우 국내 제조업이 공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이번 미국과 무역 협정에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조선, 반도체, 이차전지, 원전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을 미국에게 일부 내준 것이다.

물론 대미 투자로 인해 미국 시장 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나 국내 중소기업은 일거리를 잃게 되고 일자리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진화하는 한미 경제동맹, 관세를 넘어 기술 및 산업 협력으로' 좌담회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구조 속에서 한국 투자가 미국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내 제조업 기반이 약화하는 산업 공동화 우려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관세협상 현안질의에서 국민의힘은 물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규모 대미투자로 국내 생산과 일자리 감소 우려를 내놨다.

이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미 협력으로 산업을 업그레이드해서 국내에 가져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단기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정부가 피해 대책을 만들고 필요하면 해외기업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미투자에 따른 일부 국내 산업공동화를 감수하더라도 우리 제조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 국내 제조업 피해은 정부의 재정·세제지원과 해외기업 유치로 메꾸겠다는 구상이다. 구 부총리는 "산업공동화 돼 큰일이라는 소극적인 개념보다 부가가치를 높여 세계시장을 다 잡자는 적극적인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새로운 통상 질서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시장 다변화와 기후변화, 공급망, 인공지능 등 신통상 규범 형성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12일 한국경제인협회(FKI) 콘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제32차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 총회에 특별 연설자로 초청받아 "개방도가 높고 규모가 작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라며 무역과 산업 융합전략 등 중장기 통상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여 본부장은 향후 한국 통상 정책의 세 가지 방향을 ▲아세안·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확대를 통한 공급망 및 시장 다변화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통상·산업·안보를 결합한 융합정책 강화 ▲기후변화, 공급망, 인공지능 등 신통상 규범 형성 주도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아세안과 인도는 한국의 주요 신흥 수출 시장으로 성장한 만큼 신흥국 및 개도국과 신규 협정을 추진해 무역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구속력이 없는 합의 기반의 포럼으로, 새로운 협력 분야의 아이디어 인큐베이터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지금이야말로 APEC이 차세대 무역 규범 논의를 주도할 때이며 한국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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