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서비스·수출입 가격 모두 움직인 10월…농산물은 하락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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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산자물가가 두 달 연속 상승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공산품 물가를 끌어올린 데다 서비스업과 수출입 물가까지 동반 상승하며 전반적인 비용 구조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가격 강세가 단기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주목하며, 향후 소비자물가에도 점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0.82(2020년 기준 100)로 전월보다 0.2% 상승했다. 9월 0.4%에 이어 두 달 연속 오름세다. 지난여름 이후 안정세를 보이던 생산자물가가 연속적으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반도체 시장의 반등과 환율 변동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공산품 부문이다. 전체 공산품은 전월 대비 0.5% 증가했다. 특히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부문은 3.9% 올라 공산품 전체 상승을 주도했다. 이 부문에는 D램과 낸드플래시(플래시메모리) 등 메모리반도체가 포함되는데, 가격 상승 폭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D램은 28.1%, 플래시메모리는 41.2%가 오르며 관련 품목 중 가장 큰 변동 폭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생성형 AI 확산, 서버용 메모리 수요 증가가 가격 반등을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 가격은 경기 변동에 따라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는 품목이지만, 최근에는 구조적 수요 증가가 겹쳐 상승 폭이 더욱 가팔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 역시 메모리반도체 수요 강세가 지속되면서 가격이 빠르게 뛰었다고 설명했다.

원자재 시장에서도 가격 상승 흐름이 관찰됐다. 금괴 가격은 13.3% 오르며 다시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 금값 상승과 안전자산 선호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수산물에서는 물오징어가 18.5% 올라 계절적 요인과 공급량 변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반면 농산물은 시금치(-47.5%), 배추(-26.1%) 등 일부 품목이 큰 폭의 하락을 보이며 전체 농림수산품 가격이 4.2% 내렸다.

서비스업도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서비스업 전체는 전월보다 0.5% 상승했다. 금융 및 보험서비스는 2.9% 올랐고, 여행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호텔은 10.7% 상승했다. 외식과 숙박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도 0.5% 증가해 체감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움직임을 보였다.

다만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 부문은 산업용 도시가스(-5.4%)와 폐기물수집운반처리(-1.6%)가 하락해 전체적으로 0.6% 떨어졌다. 제조업 현장에서 쓰이는 에너지 비용 일부가 낮아진 셈이지만, 반도체 중심의 생산 비용 상승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다.

수출입 가격이 반영된 공급물가지수와 총산출물가지수도 강한 상승 흐름을 나타냈다. 수입품을 포함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0.9% 상승해 지난해 4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원재료(1.5%), 중간재(1.0%), 최종재(0.3%) 모두 올랐는데,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입 가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품까지 더한 총산출물가지수 역시 1.1% 증가해 마찬가지로 2023년 4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생산자물가 상승을 단순한 일시적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AI 산업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환율 흐름이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공급 측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농산물 등 계절 변수로 움직이는 품목들의 가격 하락이 일부 완충 역할을 하고 있어 소비자물가로의 파급 속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서비스 가격의 흐름이 지속될 경우 내년 상반기 소비자물가에 점진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경제 전문가들은 "반도체 가격 상승은 국내 제조업 경기 개선의 신호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기업의 생산비 부담 증가와 물가 변수 확대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며 "수출 호조가 물가 상승 압력을 상쇄할 만큼 강하게 이어지느냐가 향후 경제 흐름을 가를 주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 역시 당분간 메모리 가격·환율 흐름이 생산자물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제조업 중심의 공급 측 압력과 서비스 가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물가 흐름이 다시 복잡한 국면에 접어든 만큼, 향후 국제 가격 변수와 글로벌 산업 수요 동향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번 생산자물가의 연속적인 상승은 국내 경기 회복 기대감과 함께 비용 측 부담 증가라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가격 회복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동시에 물가의 새로운 상방 리스크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향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운용 과정에서 반도체 중심의 물가 구조 변화를 주요 변수로 고려해야 할 전망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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