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극단 선택 잇따르자 뒷북 대책 마련
피해 대책위 요구 ‘공공매입 특별법’은 불가 입장
![당정협의회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04/607944_408191_5718.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주택 경매 때 우선매수권을 주고 저리대출도 지원하는 등의 대책을 공개했다. 또,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도 해당 주택에 부과된 세금보다 세입자 전세금을 먼저 변제하기로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도 추진키로 했다. 다만, 피해 대책위의 요구 사항인 공공매입 특별법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20일 오전 국회에서 전세 사기 근절 및 피해 지원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전 금융권의 경매·공매 유예 조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고, 금융기관이 제3자에 채권을 매각한 경우에도 경매를 유예하는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대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한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61)의 전세사기로 청년 3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건축왕 피해자 거주 주택 중 2000채 이상이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경매로 거리에 나앉게 된 상황이다.
이에 지난 1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깡통전세 주택의 공공 매입과 피해 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전세가격(보증금) 규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보증금 갭투기 방지 등을 위한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 등을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 대책의 하나로 경매 일정 중지 방안을 보고받고 이를 재가했다.
이어 이날 오전에는 당정협의회가 열려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여러 대책을 논의했다. 당에서는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이만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가사, 정점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등이 정부에서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이노공 법무부 차관,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청장, 김태호 국세청 차장, 조지호 경찰청 차장, 이병훈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직무대행 등이 참석했다.
■ 피해 임차인에 우선 매수권 부여.. 저리대출 제공
당정은 경매 처분으로 피해자들이 거주 중인 주택에서 쫓겨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피해 임차인이 거주 주택 낙찰 시 구입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저리 대출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박 의장은 "당정은 임차인 권리 보호와 낙찰자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방안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직적 전세 사기에 대해서는 범죄 수익을 전액 몰수 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장은 "피해 임차인들의 요청사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당 TF와 정부 TF 간 활발한 연계를 통해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위한 실현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추가 지원방안을 신속하게 검토해 이른 시일 내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도 해당 주택에 부과된 세금보다 세입자 전세금을 먼저 변제하는 내용의 지방세기본법 개정을 추진한다.
임대인의 세금 체납으로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어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됨에 따라 국세기본법은 이미 지난해 개정됐다.
이에 발맞춰 최근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 등도 지방세보다 세입자 전세금을 우선 변제하는 내용의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세기본법과 연계해 지방세기본법을 개정할 것"이라면서 "여야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국서 모인 전세사기 피해자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04/607944_408192_5740.jpg)
■ 공공매입 특별법은 ‘불가’
이날 당정 협의회에서 여러 대책들이 논의 된 가운데 피해자들의 요구 사항 중 하나인 공공매입에 대해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공공기관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을 사들여 경매 등 보증금 회수 절차를 대신하고, 임차인에게 적정 수준의 보증금을 보전해주는 공공매입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대책위 활동을 돕고 있는 김주호 참여연대 간사도 “전세 사기 피해 구제 특별법을 만들어서 공공에서 피해주택 채권을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도 "과거 정부에서 부도 임대주택 특별법을 제정해 부도 임대주택을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 기존 세입자들을 구제한 바가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깡통전세 주택의 공공매입과 피해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깡통전세 특별법을 조속히 논의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의장은 "공공이 손해를 감수하며 매입하더라도 선순위 채권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 근본적인 피해자 구제 방안이 될 수 없다"며, "사인 간 채무, 악성 임대인 채무를 공적 재원으로 대신 변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피해자 구제’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 조치는 오히려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상미 피해대책위 공동위원장은 “경매 일정이 중지된다고 하니 경매 참여자가 더 몰려 오늘도 낙찰세대가 최소 2곳 나왔다”며 “이미 살던 집이 경매에 붙여진 피해자들은 되레 피해를 보는 부작용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오영나 대한법무사협회 부협회장은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사집행 절차는 본질적으로 채권자와 채무자의 평등을 전제를 한다”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기존 사법 절차에서 특별한 지위로 인정하려면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