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해병대 수사단 조사결과 발표 한시간전 돌연 취소
해병대 수사단, 2일 해병 1사단장 등 8명 과실치사 혐의 조사보고서 경찰에 전달
국방부, 같은날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으로 보직해임.. 수사기록도 회수
국방부 행태에 사건 축소 은폐 의혹 불거져.. 유족 "진상규명 제대로 될지 의구심"
![국방부 행태에 사건 축소 은폐 의혹 불거져.. 유족 "진상규명 제대로 될지 의구심"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08/616329_417377_5520.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국방부가 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다시 경찰에 넘기는 과정에서 해병 1사단장 등 관련자들의 혐의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이 해병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지난달 19일 오전 9시 3분께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 보문교 남단 100m 지점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이후 같은날 저녁 11시 10분경 실종 지점에서 5.8km 떨어진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소방당국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후 해병대가 '수색작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실종자 수색에 들어가기 전에는 하천변만 도보수색하기로 다른 구조기관과 협의해 결정했으나 현장에서 갑자기 수중수색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현장 지휘관들이 '물속 수색이 어렵다'고 보고했지만 상부에서 밀어붙였다는 의혹도 있다.
이에 해병대 수사단은 수색작전 투입 부대의 관련 매뉴얼 준수 여부, 현장 지휘관 판단의 적절성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국방부, 해병대 수사단 조사결과 발표 돌연 취소.. 경찰 이첩도 제동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는 지난달 31일 발표예정이었으나 브리핑 한시간 전에 돌연 취소됐다.
국방부는 수사관할권이 군이 아닌 민간 경찰에 있기에 군이 조사한 내용을 언론에 공표하면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일각에서는 수사단의 조사결과를 덮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또 다른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지난 2일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박상현 1사단 7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사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전달했다.
그런데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제출한 자체수사 기록을 돌연 회수한 것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경찰로 이첩을 대기할 것을 명했는데 해병대 수사단장이 이를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경찰에 넘겼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종섭 장관이 이첩 대기를 명한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경찰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이첩을 보류하라 지시했다는게 국방부 측 설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병대 수사단에 사실관계만 적시할 것을 명했는데 이마저도 듣지않고 조사결과를 이첩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보고서가 경찰 이첩 전 이미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등에게 보고됐고, 무엇보다 이 장관의 서명까지 거쳤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경찰로 자료를 넘긴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을 이유로 지난 2일 보직해임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이 혐의자로 지명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경북 예천 수해복구 작전을 지휘한 박상현 여단장 등을 국방부가 제외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듣지 않았다는 의혹도 나온다.
7일 SBS 보도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단은 임 사단장의 지휘 책임이 아닌 과실 치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된다. 국방부의 개입 의혹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를 통해 "국방부 장관이 조사결과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면서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경찰에 수사기록 이첩.. 범죄 혐의는 모두 삭제
그리고 몇일 뒤인 7일, 국방부는 다시 경찰에 수사기록을 다시 넘겼다. 하지만, 해병 1사단장 등 관련자들의 범죄 혐의는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수사절차 훈령에 따른 이첩 보고서 양식에는 인지 경위, 범죄 사실과 함께 범죄 혐의도 적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때문에 국방부가 시행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채 상병의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자 유족들은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지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채 상병 부모는 4일 국방부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최근 일련의 우리 아들 수근이 사건의 경찰이첩을 두고 벌어진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접하고 당사자인 저희 유족들은 불편한 심정"이라며 "수근이의 희생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런지, 사고원인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고한 재발방지 대책이 수립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유족들은 국방부와 해병대의 문제가 사고원인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 의지와는 무관하기를 소망한다"며 "다시는 우리 장병들이 수근이와 같은 희생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