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대 증원 멈추고 합리적·객관적 기구에서 새롭게 논의하자"
의대교수협 "증원 원점 재검토가 단일안…의료붕괴 목전"
전공의 절반 복귀 의사…군복무 단축·의료사고 법적부담 완화 등 조건
![의정갈등이 장기화되고 있으나 의협과 전공의들이 각기 다른 조건을 내세우고 있어 사태 해결이 쉽지 않게 됐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404/643887_449228_1029.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의정갈등이 장기화되고 있으나 의협과 전공의들이 각기 다른 조건을 내세우고 있어 사태 해결이 쉽지 않게 됐다. 의협과 의대교수협은 의대 증원을 원점 재검토하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사직 전공의 절반 가량은 여기에 군 복무기간 단축, 의료사고 법적부담 완화, 파업권 보장,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협 "의대 증원 멈추고 합리적·객관적 기구에서 새롭게 논의하자"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의대 정원 증원을 멈추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논의를 하자는 입장이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17일 "의료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 사회 각계가 당장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이를 이른 시간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 증원 정책으로 인한 의정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이어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내년에 전문의 2800명이 배치되지 못하며, 학생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당장 내년에 의사 3000명이 배출되지 못한다"며 "지금의 상황이 더 길어지면 교수들의 사직서 수리와 상관없이 경영 압박으로 많은 대학병원이 구조조정과 도산의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증, 응급 등 분야에서 적절하게 환자들을 돌 볼 수 없게 되며, 의료기기 산업, 제약산업계 문제도 심각해지고 간병인, 병원, 주변 상권의 문제도 심각해진다"며 "의대 정원 증원을 멈추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새로 논의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꿔달라"고 강조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의료계, 소비자,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협의체는 김윤 서울대의대 교수가 발표한 걸로 알고 있는데, (김윤 교수는)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가는 데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인물로 (의협에서는) 꼽고 있다"며 "의료계 대부분에서는 김윤 비례대표 당선인이 주관으로 하는 여러가지 위원회들은 보이콧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의대교수협 "증원 원점 재검토가 단일안…의료붕괴 목전"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단체도 의료계의 단일안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국 의대 전체 40곳의 교수협의회가 참여 중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17일 성명을 내 "목전에 닥친 의료 붕괴의 상황에서 정부에 의료계와의 신속한 대화를 촉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의교협은 이날 성명에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입장의 근거를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는 정부가 증원 과정에서 의대 교수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의교협은 "2000명 증원은 교육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숫자"라며 "인적 자원과 시설 미비로 많은 대학에서 의학교육 평가 인증을 받지 못하게 되고 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둘째는 증원이 필수의료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전의교협은 "필수의료의 위기는 공적인 자원인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사적인 영역에 방치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전의교협은 "진료 수입에 얽매이지 않고 전문성, 소신을 잃지 않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전엔 증원을 논의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전제했다. 정부가 인용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두고는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 책임 체계가 운영 중이라고 했다.
셋째 이유는 소위 '빅5 병원'(서울대·서울성모·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라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 쏠림과 관련한 입장이다. 경증 질환은 가까운 병원에서 해결하는 체계를 확립하고, 최소 진료 시간을 확보해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이야기다.
전의교협은 "이들 대책을 먼저 마련한 후 의사 수 부족을 논해야 한다"며 "필수 의료의 문제를 진심으로 통감한다면 무엇이 실효성 있는 대책일지 현장을 보고 전문가의 의견을 정부는 경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절반 복귀 의사…군복무 단축·의료사고 법적부담 완화 등 조건
의협이나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만을 제시하고 있으나 집단사직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군 복무기간 단축, 의료사고 법적부담 완화, 파업권 보장,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는 16일 병원을 떠난 전공의 20명에 사직 이유와 수련 환경에 대한 의견, 복귀 조건 등을 물은 인터뷰 결과를 공개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사직 인턴은 "전공의를 하지 않으면 현역 18개월, 전공의를 마치거나 중도 포기하면 38개월 군의관을 가야만 한다"며 "이러한 군 복무 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동료·후배들은 굳이 전공의의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본인이 필수의료 과목 2년차 레지던트라고 밝힌 전공의는 '복귀를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돼야 하나'라는 질문에 "수련을 하며 기소당하고 배상까지 하게 된 선배와 교수님들을 많이 봤다"며 "선의의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복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다른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 또한 "환자 사망을 포함해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에 대한 무분별한 소송을 막는다면 수련 현장으로 복귀하겠다"고 했다.
전공의들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전공의들은 "전공의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권한이 보장된다면 다시 돌아가겠다", "업무개시명령으로 대표되는 (의료법상의) 전공의 강제노동조항을 없애지 않는다면 아무도 수련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외에도 "대통령 사과는 어렵더라도 실무 책임자이자 망언을 일삼은 복지부 차관은 반드시 경질해야 한다", "업무강도와 난이도가 높은 과목에 알맞은 대우가 필요하다"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류옥 씨는 이와 같은 인터뷰 결과를 근거로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환자를 버리고 환자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대신, 더 이상 의료체계가 불능이 되지 않도록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전공의 1만2천774명과 의대생 1만8천3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도 지난 2일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집단행동을 벌이는 전공의와 의대생 96%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줄이거나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66.4%(1천50명)는 '차후 전공의 수련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93.0%·복수응답), '구체적인 필수의료 수가 인상'(82.5%), '복지부 장관 및 차관 경질'(73.4%), '전공의 근무시간 52시간제 등 수련환경 개선'(71.8%)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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