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기자회견, 홍철호 정무수석 "부산일보 기자, 대통령에 무례.. 시정해야"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조 등 언론계, 십자포화 "시대착오적"
조중동도 비판 가세 "왕조시대냐"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 같은 건 없다"
민주 "尹, 국민에 대한 예의 먼저 갖추라".. 대통령실 "적절치 못한 발언, 사과"

윤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부산일보 기자 [사진=MBC 갈무리]
윤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부산일보 기자 [사진=MBC 갈무리]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부산일보 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명확하게 해달라'고 질문한 것을 두고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19일 "무례하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조중동 등 보수 매체들까지 "왕조시대냐"며 날선 비판을 이어가자 홍 수석은 결국 21일 머리를 숙였다.

홍철호 정무수석 "부산일보 기자, 대통령에 무례.. 시정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김건희 여사 문제와 명태균 녹취록으로 불거진 공천개입 의혹 등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사과하기 위해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의혹은 모두 부인했다.

이에 기자회견 말미에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가 "흔히 사과를 할 때 꼭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부분에 대해 사과할지 명확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다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하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 우리에게 사과를 했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 여기에 대해 보충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서 '이 부분은 잘못한 거 아니냐'라고 해주시면 제가 그 팩트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릴 것"이라며 "제가 대통령이 돼서 기자회견을 하는 마당에 그 팩트를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 맞습니다 할 수도 없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후 약 2주가 지난 19일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해당 기자의 질문이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며 불쾌한 심경을 표했다.

홍 수석은 "대통령이 사과했는데 마치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하듯 '뭘 잘못했는데' 이런 태도는 시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조 등 언론계, 십자포화 "시대착오적"

홍 수석의 발언이 전해지자 언론계에서는 성역 없는 질문이 이뤄져야 하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정무수석이 특정 질문을 두고 무례하다고 말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사자인 박석호 기자는 20일 기자협회보에 "언론의 역할과 기자의 사회적 책임을 부정하는 발언"이라며 "이제 누가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실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 부산일보지회도 성명을 내고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정당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이를 무례하다고 규정하는 대통령실의 태도는 언론의 본질을 왜곡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지역기자단도 같은 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홍철호 수석의 사과와 해명, 대통령실의 책임 있는 입장을 요구했다.

지역기자단은 "홍 수석은 박석호 기자의 질문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 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의 역할과 기자의 사회적 책임을 부정했다"며 "태도를 시정해야 한다는 것은 기자들에 대한 '눈치 주기'로 지역기자단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것으로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1일 성명을 내고 "21세기 한복판 민주 공화국을 국체로 규정한 헌법을 부정하고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받은 공복인 대통령을 만인지상인 왕으로 모시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이라며 "이 정권의 한심한 작태를 비판할 문장이 이제 모자랄 정도"라고 날을 세웠다.

언론노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언론인들이 피와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가치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며 "무례한 건 언론과 국민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이다. 헌정 질서를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사죄하고 스스로 물러나라"고 꼬집었다.

조중동도 비판 가세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 같은 건 없다"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성향 매체들도 한목소리로 대통령실의 대응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21일 사설에서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 같은 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매체는 "대통령도 기자회견장에서만큼은 언론의 취재원일 뿐"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자가 대통령에게 질문하면 안 되는 어떤 성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존재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역시 같은 날 사설에서 홍 수석을 향해 "왕정시대의 정무수석인가"라고 질타했다.

매체는 박 기자의 당시 질문이 "윤 대통령으로선 답하기 곤란했겠지만 국민 입장에선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면서 "그런 질문을 한 기자를 지목해 무례하다고 한 것이야말로 언론을 향한 겁박이자 언론과 국민에 대한 무례"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기자수첩을 통해 "무제한 회견을 예고했던 대통령실이 질문에 예의 잣대를 들이댈 줄은 몰랐다"면서 "당연한 국민적 의구심을 대신 묻는 기자가 예의 없다고 한다면 언론의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 "尹, 국민에 대한 예의 먼저 갖추라".. 대통령실 "적절치 못한 발언, 사과"

더불어민주당도 홍 수석을 향한 비판에 동참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을 대신한 기자의 질문에 '무례하다'고 하는 것은 국민에게 '무례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했다던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기자의 질문에 대해 예의 운운하기 전에 윤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예의를 먼저 갖춰야 한다"면서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진 뜬구름 잡는 해명에 참다 참다 건넨 기자의 질문은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묻고자 한 질문이었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압도적 국민이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을 둘러싼 국정농단, 공천개입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예의 운운하며 질문하는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특검을 수용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사과 드린다"...박 기자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다"

언론계와 야당의 비판이 쏟아지자 홍 수석은 21일 결국 머리를 숙였다.

홍 수석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 대변인실 공지를 통해 "지난 1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관련 답변 과정에서 정무수석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부산일보 기자분과 언론 관계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정무수석으로서의 본연의 자세와 역할을 가다듬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당사자인 박석호 기자에게는 직접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기자는 대통령실 사과문 발표 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홍 수석이나 대통령실이) 직접 사과한 것은 없었다"면서 "사과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과 여부를 떠나 중요한 건 대통령실의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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