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첩 보류·과실치사 혐의 삭제 등 외압 의혹 당사자 강제수사 돌입
해병대 수사관-경북 경찰 통화 녹취 공개.. "진실을 이렇게 왜곡" "밝혀질 것은 밝혀져야"
군인권센터 "채 상병 수사 외압, 경찰 지휘부 개입 정황" "슈퍼 국정조사 해야"
해병대 예비역 "진실규명 하라" "쓴소리 하면 남이냐" 사령부 압박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공수처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국방부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공수처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국방부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국방부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수사보고서 경찰 이첩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가 밝혀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런 가운데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해병대수사관과 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팀장 간 통화 녹취가 공개되면서 외압의 정황이 보다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첩 보류·과실치사 혐의 삭제 등 외압 의혹 당사자 강제수사 돌입

공수처는 17일 지난해 집중호우로 순직한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공수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채상병 순직사건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뒤 국방부 검찰단이 이를 다시 회수한 과정이 적법했는지를 들여다 보고 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수해 현장에서 구명조끼 없이 실종자 수색작전에 동원됐다가 사망한 채 상병 관련 수사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부터 하급간부까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해당 문건은 국방부장관의 결재 후 경찰에 이첩됐으나 바로 직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박 전 수사단장은 임성근 전 사단장 등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를 삭제하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첩 보류를 지시했는데도 박 대령이 따르지 않았다"며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하고 항명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 수사를 받게 했다.

이후 박 전 단장 측은 지난해 8월 23일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박 전 단장 측은 채 상병 사건은 군이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경찰에 이첩한 것은 정당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수사단이 작성한 보고서와 사건 서류를 별도의 조치 없이 경찰로부터 회수한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공수처 압수수색 대상은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과 경찰에 이첩한 사건을 다시 찾아오는 과정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전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들이다.

특히 유 관리관은 수사 외압 의혹을 고발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상대로 수차례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특정하지 말라'는 등 압박한 당사자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유 관리관 등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 [사진=연합뉴스]
박정훈 전 수사단장 [사진=연합뉴스]

해병대 수사관-경북 경찰 통화 녹취 공개.. "진실을 이렇게 왜곡" "밝혀질 것은 밝혀져야"

군인권센터 "채 상병 수사 외압, 경찰 지휘부 개입 정황" "슈퍼 국정조사 해야"

이런 가운데 새로운 외압 정황도 확인됐다. 군인권센터가 16일 공개한 경찰과 해병대 수사단의 통화 녹취록에 사건기록이 국방부 검찰단으로 회수되는 과정에 경찰 간부가 개입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녹취록을 공개하며 진상규명을 국회에 촉구했다.

이날 공개된 2개의 녹취는 지난해 8월 경북경찰청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수사기록이 회수된 날과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수사단을 압수수색한 날 이뤄진 통화기록이다.

센터 측은 제보된 음성파일 속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녹취록 공개 전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익성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며 공개 사유를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공개된 음성으로 윗선의 수사 개입 정황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녹취는 해병대수사단 소속 수사관이 지난해 8월 2일 오후 7시 20분쯤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사건 기록을 회수해가자 경북청 담당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는 내용이다.

녹취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관은 "오늘 저희가 사건을 정확하게 인계를 드렸다고 말씀드렸지 않나. 그런데 경북청 공식 입장은 사건을 인계받은 게 아니고 사건 자료를 제공받았다는 식이었다"고 항의조로 말했다.

이어 "아까도 저희가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외압적인 부분에서 저희도 '청(대통령실)에서 분명 외압이 들어올 거다'라고 말씀드린 건데,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서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 연락드렸다"며 경북경찰청이 수사 외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취지로 물었다.

이에 경찰 담당 팀장은 "저희들도 지휘부에 검토 중이라서 일단 안 그래도 저희 대장님도 헌병대장님한테 전화를 받으셨다"며 "그런 사정이 있는데 그 부분은 차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이 대화 내용에 대해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수사기관에서 완료된 수사기록을 다른 수사기관이 가져갈 때는 통상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야 한다"며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다음 원자료를 복사하면 되는데 이를 안 지켜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통화에 등장하는 지휘부가 경찰청 지휘부인지, 검토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며 "지휘부가 누구든지 경찰이 조직적으로 기록 탈취에 대응할 논리를 만들기 위해 토의를 거친 정황이 분명해진 만큼 경찰도 이 사건의 수사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녹취는 박 전 수사단장이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돼 국방부검찰단이 해병대수사단을 압수수색했던 지난해 8월 3일, 해병대 수사관이 경북청 담당 팀장에게 다시 전화를 건 내용이다. 해당 통화에서 두 사람은 억울함 때문인 듯 흐느끼는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당시 해병대 수사관은 "저희가 범죄자 취급을 받으면서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며 "사실 규명을 위해서 그 책임자를 찾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나"라고 말했다.

이에 경북청 팀장은 "그것(수사)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밝혀질 것은 밝혀져야 한다"며 "그게 어떻게 그렇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해병대 수사관이 "진실을 이렇게 왜곡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세상이 무서울 줄은 몰랐다"며 "채모 상병 사건이 거기(경북청)로 가면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당부했고, 경북청 팀장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군인권센터는 국방부와 대통령실 내 채 상병 사건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참석하는 '슈퍼 국정조사'를 열어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센터 관계자는 "이 사건 수사에 참여한 해병대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은 군인이기 때문에 언론 인터뷰에 참여하면 박정훈 대령처럼 징계를 받을 수 있다"며 "합법적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국정조사장에서 국가법에 따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병대 예비역들도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병대 예비역들도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병대 예비역 "진실규명 하라" "쓴소리 하면 남이냐" 사령부 압박

해병대 예비역들도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병대가 지난 16일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해병대 예비역 대상 정책설명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는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 사령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예비역들은 모두 배제됐다. 행사에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이하 전국연대)는 16일 행사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쓴소리를 하면 남이 되는 것이 해병대냐. 해병대 사령부의 편가르기에 경악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연대는 공문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했으나 해병대 사령부의 반대로 참석이 배제됐다. 이는 전국연대가 채 상병 순직 및 수사 외압 사건에 대해 해병대 사령부에 지속적으로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국연대는 "박정훈 대령은 법원의 판결 없이 보직 해임됐는데 임성근은 전무후무한 무보직 정책 연수의 특혜를 세 달째 왜 받고 있는가"라면서 "이 정당한 물음이 두려워서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더니 우리를 거리로 내몬 것이냐"고 날을 세웠다.

전국연대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면서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 속에 빨간 명찰, 자부심으로 살아온 100만 해병대에게 군인의 양심과 정의로운 해병대의 정신으로 비겁한 사령관이 되지 말고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이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예비역들은 빨간색 팻말을 들고 "사령관의 한 마디면 진실이 밝혀진다" "외압에 굴복말고 정의롭게 대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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