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이 반도체 패키징 사업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반도체 패키징 사업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국내 경제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대내외 악재가 거듭되면서 이른바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가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 내수시장도 급격히 위축되면서 한국경제는 기로에 섰다. 이러한 국내 경제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 생존하는 유일한 길은 단연 ‘혁신’이다. 이에 치열한 산업현장 속에서 답을 찾고 경제와 미래를 견인하는 기업들의 혁신성장을 응원하는 ‘폴리뉴스’는 신산업 분야의 중요한 현안과 쟁점을 공유하고, 급변하는 경제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해 새로운 미래 혁신성장 해법을 시리즈로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부터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초거대 AI라는 천군만마를 만났다. 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하느라 시스템 반도체로의 전환이 늦었던 것이 오히려 호재가 된 모습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기반으로 진화한 AI 반도체가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례 없는 한국 반도체 암흑기

반도체 1위를 자부하던 한국의 반도체는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다. 지난해 초부터 PC, 스마트폰 등 IT 제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꺾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97% 급감하며 2700억원에 그쳤고,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분기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반도체 수요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1월과 2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40% 이상 줄어들었다. 수요가 떨어지다 보니 가격도 곤두박질 치고 있다. D램 가격은 2021년 7월 4.10달러에서 올 1월엔 1달러대까지 추락했으며, 낸드플래시 가격 역시 지난해 6월부터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적자가 2개월간 6조원 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가 주력인 TSMC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3분기부터 매출액 기준으로 삼성전자 반도체를 제치고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도 약 26조4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0조700억원을 기록한 삼성전자를 제쳤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에만 8조3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주요 고객사들의 HPC(고성능컴퓨터) 프로세서 주문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지속적인 매출 증가가 예상된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하이퍼클로바X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네이버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하이퍼클로바X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네이버

 

◆  챗GPT가 불러온 나비 효과

추락하던 국내 반도체 시장에 한줄기 빛처럼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챗GPT’의 등장이다. 지난해 말 등장한 챗GPT는 초거대 AI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챗GPT는 출시 두 달 만에 월간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틱톡은 9개월, 인스타그램은 30개월이 소요된 것을 고려하면 역대급 열풍이다. 이는 초거대 AI기반의 챗GPT가 기존의 ‘검색’을 AI와의 ‘대화’로 패러다임을 바꾼 덕분이다.

초거대 AI는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며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AI다.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며 판단할 수 있고 특정 용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챗GPT의 기반이 되는 초거대 AI의 글로벌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술 경쟁은 치열하다.

특허청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등 지식재산권 5대 주요국에 출원된 초거대 AI 관련 특허는 지난 2011년 530건에서 2020년 28배인 1만484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한국은 전체 11.3%(4785건)의 관련 특허를 출원해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에 자리하고 있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1213건(2.9%)의 특허를 출원해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등을 따돌리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챗GPT에 대항할 한국형 챗봇도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네이버는 올 상반기 중 한국형 챗GPT인 '서치GPT'를 공개한다. 자체 검색창에 초거대 AI를 접목한 '서치GPT'를 통해 쇼핑, 페이, 지도 등 서비스 이용자의 검색의도에 최적화된 정보를 직관적인 형태로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초거대 인공지능 '하이퍼클로바X'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이퍼클로바X는 '챗GPT'보다 한국어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해 한국어 사용자가 원하는 AI의 모습을 발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 대표는 "하이퍼클로바X는 이용자가 자체 보유한 데이터를 하이퍼클로바와 결합해 사용자 니즈에 맞는 응답을 즉각 제공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한 초대규모 AI"라면서 "개별 서비스부터 특정 기업 또는 국가 단위까지 누구나 저마다 목적에 최적화된 AI 프로덕트를 만들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이 AI반도체 ‘사피온 X220’을 들어보이고 있다 / 사진=SK텔레콤
최태원 회장이 AI반도체 ‘사피온 X220’을 들어보이고 있다 / 사진=SK텔레콤

 

◆ 초거대AI 학습 돕는 AI반도체가 새로운 먹거리

초거대 AI의 기반이 되는 AI 반도체가 침체된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초거대 AI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한 번에 학습한다. 현재 서비스 중인 챗GPT의 AI학습에는 무려 1만개가 넘는 엔비디아의 'A100' GPU가 사용됐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HBM)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 HBM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셈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GPU를 넘어서는 AI 특화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그 출발은 NPU(Neural Processing Unit, 신경처리망장치)이다.

네이버클라우드 곽용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현재 삼성전자와 함께 대규모 언어모델(LLM) 연산과 학습, 추론에 필요한 기능을 모두 갖추면서도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비 10분의 1 크기 모델 사이즈, 4배 이상 전력효율성을 갖춘 경량화된 NPU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 기업 가운데 퓨리오사, 리벨리온, 사피온 3사가 AI반도체 기술에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퓨리오사의 '워보이' NPU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기업용 통합 클라우드 플랫폼 '카카오 i 클라우드'에 적용됐다. '카카오 i 클라우드'는 워보이 AI 반도체를 통해 딥러닝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리벨리온은 KT클라우드와 협력하고 있다. 상반기 출시 예정인 KT의 초거대 AI 서비스 '믿음'에는 언어처리에 특화된 리벨리온 AI 반도체 '아톰'이 탑재된다. 아톰은 엔비디아의 GPU와 비교했을 때 전력 소모량이 6분의 1에 불과하다.

KT클라우드 이태경 팀장은 "엔비디아의 완성형 장비와 같은 기존 고가의 GPU는 엔지니어의 기술 지원 비용까지 합쳐지면 장비 하나당 4억~5억 정도 한다"며 "NPU를 쓰면 GPU의 4분의 1로 가격이 줄어들며, 전력량도 4분의 1, 5분의 1 수준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 3개 회사가 투자해 설립한 AI 반도체 기업 사피온의 X220은 NHN클라우드와 진행한 실증 사업을 통해 엔비디아 'T4' GPU보다 처리 속도가 5.1배 빠른 것으로 확인됐다.

사피온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에서 ‘사피온 X220’ 칩을 탑재한 자연어처리(NLP)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챗GPT와 동일한 트랜스포머를 원천기술로 한다. 전시회에서는 주관식 수능시험과 같은 방식으로 주어지는 지문과 문제를 AI가 고속으로 풀어내는 데모를 선보였다. 그 결과 사피온 X220이 GPU 대비 약 4배에 달하는 전력 대비 성능을 개선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사피온 측은 “지난 2020년 말 출시한 X220이 이미 오래전부터 트랜스포머 기반의 언어모델을 효율적으로 동작시키고 있었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X220 보다 4배 이상 성능을 끌어 올린 X330을 출시 예정이며, 이를통해 챗GPT와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을 차별화된 성능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가 올해 K-클라우드 프로젝트 사업을 통합 공고한다 / 사진=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가 올해 K-클라우드 프로젝트 사업을 통합 공고한다 / 사진=과기정통부

 

◆ AI반도체 고도화 ‘K-클라우드 프로젝트’

AI반도체 산업 확대를 위해 정부의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저전력 국산 AI반도체 개발과 데이터 센터 적용을 통해 국내 클라우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들에게 향상된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K-클라우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총 8천262억원을 투자하여 국산 AI반도체를 3단계(NPU→저전력PIM→극저전력PIM)에 걸쳐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전영수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오픈AI의 챗GPT와 같이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AI가 우리 일상 속으로 보다 폭넓게 확산되면서 AI 연산에 특화된 고성능·저전력 AI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K-클라우드 프로젝트를 통해 국산 AI반도체가 데이터센터의 저전력화 및 클라우드와 AI 서비스 비용 절감 부분에서 시장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향후 글로벌 진출도 가능한 성공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의 올해 AI반도체 관련 예산은 총 1952억원이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PIM인공지능반도체 기술개발 사업 등 계속사업과 함께 AI 반도체 첨단패키징을 위한 '반도체 이종접합(75억원)', AI반도체 SW개발을 위한 '인공지능반도체 SW통합플랫폼 기술개발(51억원)', "거대인공신경망 인공지능반도체 SW기술개발(40억원)', 고급인재양성을 위한 'AI반도체 대학원 사업'(3개교, 42.5억원) 등이 올해 신규사업으로 착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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