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방송4법 저지 위해 100시간 넘게 필리버스터
野, 전 국민 25만원 및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 예고.. 필리버스터 다시 반복
여야 강대강 대치에 필리버스터 피로감.. 소수 정당 보호·여론 환기 효과 실종
주호영 "바보들의 행진 멈춰야" vs 박찬대 "여당의 떼쓰기" 출구 안보여

텅빈 여당 의석 2024.7.29 [사진=연합뉴스]
텅빈 여당 의석 2024.7.29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22대 국회 개원 후 두달이 지났으나 야당 주도의 법안 처리 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재표결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실상 국회의 입법권과 의회 정치기능이 상실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현재 국회는 '필리버스터 국회'다. 야당의 법안 발의에 맞서 여당은 유일한 대응 수단으로 '필리버스터' 밖에 쓰지 못한채 의미없는 시간 낭비가 이어지고 있다. 짧은 시간 내 수차례 필리버스터가 반복되자, 여소야대 정국에서 소수 정당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알린다는 취지와 동떨어진 발목잡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숙의 과정 없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야권을 향해서도 정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방송4법'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준 '野단독상정 - 與 필리버스터 - 野 필버 강제종료 - 野 단독 통과'의 프로세스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장장 100시간 넘는 필리버스터에도 '방송4법'은 저지하지 못한채 4개법안이 야권 단독으로 통과됐다. 

또한 앞서 지난 7월3일에 야당 단독으로 상정됐던 '채상병 특검법' 재의결때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했으나 결국 다음날인 7월4일 국민의힘 불참 속에 야당 단독으로 표결 통과됐다. 

이같은 '필리버스터 쳇바퀴 국회'는 앞으로  전국민25만원, 노란봉투법, 김건희특검법 등 野주도 법안이 줄줄이 대기중이다.  타협과 협의의 모든 의회정치 과정과 입법과정을 생략한 국회는 끝없는 '필리버스터의 지옥'에 빠져들고 있다. 

국힘, 방송4법 저지 위해 100시간 넘게 필리버스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 관련 직능단체에 부여하는 내용의 방송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른바 방송 4법 가운데 세 번째로 통과된 법안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8일 새벽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후 24시간이 지나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고 법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뒤에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종결을 결정할 수 있다.

야권이 이날 방문진법 개정안 처리 직후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하자 국민의힘은 다시 필리버스터를 개시했다. 이 역시 24시간이 지난 후에는 야당 주도 표결을 거쳐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지난 25일 오후 5시 29분 방송4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앞서 방통위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24시간7분이 흐른 26일 오후 종료된 뒤 표결로 통과됐다. 이어 방송법 필리버스터는 지난 26일 저녁 6시15분 시작돼 30시간20분이 흐른 28일 0시 넘어 마무리됐다.

이날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30일 오전 7시 29분까지 이어지면 110시간을 채우게 된다.

野, 전 국민 25만원 및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 예고.. 필리버스터 다시 반복

문제는 방송4법 이후에도 야당 주도의 법안 상정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법과 노란봉투법도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여당은 민생지원금법이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물가 상승만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란봉투법도 친노조·반기업법이란 지적을 받았고 21대 국회 때 윤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적이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2시께 국회 본청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와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추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헌법상의 기본권 침해뿐만 아니고 노조법, 민법 등 법률 간의 상충 우려도 굉장히 크고 또 산업 현장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노사관계 근간을 지금 무너뜨릴 그런 우려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에서 앞장서고 이 법이 절대 현장에서 시행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 헌법과 법률이 부여하고 있는 집권여당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두 법안을 상정할 경우 방송 4법 때처럼 필리버스터를 통해 부당성을 주장할 계획이지만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고 강행 처리할 게 확실하다.

그럴 경우 22대 국회는 개원 두달 만에 6개의 법안이 필리버스터를 거쳐 통과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거쳐 입법을 강행한 사례는 4년간 공수처법, 국정원법, 남북교류협력법,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5건이었다.

이들 법안 외에도 쟁점 법안은 수두룩하다. '김건희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양곡관리법' 등이 준비 중인 상황이다.

김대중, 필리버스터로 동료 의원 구속 막자 박정희 정권 의원 발언 시간 제한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192시간25분.. 국내 최장 기록 윤희숙 12시간47분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의미한다.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노예제 허용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캔자스-네브래스카법을 의결할 때 반대파 의원들이 장기간 토론 등으로 의사진행 방해를 한 것을 필리버스터라고 불렀다.

현대 의회에서 필리버스터는 나라마다 조금씩 양상이 다르다.

영국 하원은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안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발언이 한정돼 있다. 반면, 미국 상원은 발언 주제나 시간에 제한이 없어 발언권을 얻은 의원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채 본인이 원하는 한 발언을 계속할 수 있다.

프랑스 의회에서는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내는 방식으로 필리버스터가 이뤄졌다. 국영기업 가즈 드 프랑스를 민영화하는 법안에 대해 당시 야당은 수정안 13만7449건을 제출해서 법안 통과를 저지하려고 했다. 수정안을 하나씩 표결 처리하는데 약 10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으나 민영화 반대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낮자 수정안을 모두 철회한 바 있다.

일본 의회는 본회의 표결 시 기표소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지난 1992년 유엔평화유지군활동협력(PKO)법안 표결 때 사회당 등 야당은 1미터에 1시간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때문에 당시 중의원에서 표결이 끝나는 데 나흘이나 걸렸다.

국내에서는 지난 1964년 4월20일 김대중 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야당 동료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 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가 이뤄진 것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김 의원에 대한 구속 동의안을 제출하자 야당은 법무부 장관을 불러 구속 동의안 청구 경위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며 의사일정 변경을 요구한 뒤 김대중에게 제안 설명에 나서게 했다.

야당 지도부의 요청을 받은 김대중은 원고도 없이 단상에 올라 한번도 횡설수설하지 않고 연설을 이어갔다. 결국, 본회의는 이날 구속 동의안을 상정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은 국회 회기가 끝난 뒤 동의안 없이 김준연 의원을 구속했으나 야당과 국민의 반발 때문에 석방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 체제를 구축한 직후인 1973년 2월 의원의 발언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을 추진했고, 이후 2012년 19대 국회에서 필리버스터 제도가 부활했다.

2016년 2월23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등은 테러방지법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모두 38명의 의원이 참여한 이 필리버스터는 192시간25분 동안 이어졌으며, 마지막 발언자인 민주당 원내대표 이종걸 의원은 12시간31분으로 국내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국내 최장 기록은 지난 2020년 국가정보원법·남북관계발전법 등 개정안 처리 저지를 위해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12시간47분간 발언한 것이다.

여야 강대강 대치에 필리버스터 피로감.. 소수 정당 보호·여론 환기 효과 실종

주호영 "바보들의 행진 멈춰야" vs 박찬대 "여당의 떼쓰기".. 출구 안보여

이처럼 필리버스터는 소수 정당이 다수 정당의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면서 국민 여론을 동원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았다.

하지만 22대 국회 들어서는 짧은 기간 필리버스터가 반복되면서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남용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방송4법처럼 당장 민생과 관계 없는 법안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모습은 여당은 물론 야당을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의원들 사이에서는 승자 없는 전쟁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여당 입장에선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없고, 야당도 법안을 처리하더라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사실상 예정된 터라 양당 모두 헛심만 쓰는 꼴이라는 것이다.

방송 4법 관련 필리버스터 사회를 거부한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며 "여야 지도부가 국회의원들을 몰아넣고 있는 이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거부권으로 무효가 될 법안을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은 입법권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행위"라며 "국회의장은 지금이라도 '충분한 여야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법률안과 의안은 처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여야가 충분히 논의할 숙려 기간을 더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야당은 여권이 압도적 여소야대라는 지난 4월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채상병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벌써 15번째 거부권 행사다. 이번에 통과되는 방송4법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가 유력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대 국회 당시에도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강민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거부권 남발로 삼권분립과 의회, 그리고 대한민국 국정을 망가뜨린 건 바로 대통령인데 국민을 바라봐야 할 국회의원이 용산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여권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방송장악을 위한 여당의 떼쓰기"라고 평가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31일 "방송법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들은 21대 부터 이미 숙의의 과정을 거친 법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숙성된 법안들이다"고 폴리뉴스에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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