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국민의힘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영남권 험지출마론'에 뒤숭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 위원장이 다수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김기현·주호영 등 인지도가 높은 영남 지역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서울 등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당내에서는 연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또, 인 위원장의 발언에는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이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인 위원장은 지난 27일~28일 보도된 조선·동아일보, SBS·채널A·TV조선 등 인터뷰에서 "영남, 경남과 경북의 '스타'들, 굉장히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서울 험지에 와야 한다"며 이른바 '영남권 험지출마론'을 주장했다.

그는 "거기(영남)에 스타가 있으면 험지에 한 번 와서 힘든 걸 도와줘야 한다. 이제는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며 "영남 쪽에는 이제 상당히 쉽게 당선되니까 세대 교체도 좀 하고 좀 젊은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당이 무슨 낙동강 하류당이 돼 버렸다"고 지적하고 "자기가 편한 지역구에서 이탈해야 한다. 영남이 통째로 다 바뀌어야 한다. 강박증처럼 영남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며  "살려면 변해야 한다. 죽으려면 안 변해도 된다"고 '영남물갈이'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는 "(대구의) 주호영도, (울산 남구을) 김기현(대표)도 스타다. 위원장이 '당신 어디 출마하시오'하는 건 월권이지만 회의에서 혁신위원들이 구체적으로 거명하면 그건 전달할 생각"이라고 김 대표 등 실명까지 거론하며 혁신위 안건 가능성도 언급했다.

'개인 의견' 전제하면서도 "혁신위에서 다룬다면 따라야 할 것",,,'낙동강 하류' 발언 이어 '영남 물갈이론' 전면화

인 위원장은 "제 개인 생각"이라고 하면서도 "(혁신위에서) 그런 방향으로 가는 원칙을 정해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 위원장은 지난 23일에도 언론에 "와이프 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된다. 많이 바뀌어야 된다"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한다"며 변화와 쇄신을 강조하면서 에둘러 '영남 중진 물갈이론, 험지출마론'에 불을 지폈다. 당시 TK,PK 영남 중진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25일 기자들과 만나 "농담도 못하나"라고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그러면서 "낙동강 하류는 6·25 때 우리를 지킨 곳이다. 그 이후 많은 대통령들이 거기서 나왔다. 조금 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 위원장이 '낙동강 하류' 발언을 또다시 하며 이번엔 '영남 험지출마'를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혁신위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영남 물갈이'를 전면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은 여권 내에서 수개월 전부터 돌던 '영남권 물갈이론' '검찰공천설'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올해 초 수십명의 검찰 출신이 내년 총선에서 공천될 것이라는 '검찰 공천설'이 불거지면서 물갈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김기현 대표는 여러 차례 "검찰 공천은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으나 최근에는 용산 대통령실 참모 30~40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물갈이론이 다시 회자되어 왔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지난 7월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 진행한 '김능구의 정국 인터뷰'에서 대구에서 70% 정도 물갈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대구는 항상 60% 이상 바꿨다. 이번에는 70% 바뀐다고 본다. 그러면 12명 중에 5명 빼놓고는 7명이 바뀐다는 얘기다. 경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영남권은 물갈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물갈이 하지 않고 바꾸려면 사람을 집어 넣어야 되고 검찰을 집어넣던 새로운 사람을 집어넣으려 해도 바꿔야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달 중순 해운대갑 3선인 하태경 의원이 내년 서울 출마를 선언하면서 영남 중진 의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기현 대표는 30일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론'에 대해 "제안을 정식으로 해오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후 기자들이 '영남권 중진들이 수도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혁신위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혁신위에서 아직 제안해 온 바가 없다"며 이같이 답했다.

친윤계 "상식적으로 지극히 타당".. "김 대표, 국민 위한 선택할 것" 압박

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친윤계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평 변호사는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의 일반상식으로 볼 때 인요한 위원장의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줄 잘 선 몇 사람이 평생 꽃길만 걸어가는 것, 그들이 장기간 누려온 '멋진 세상'은 가급적 일찍 끝을 맺도록 해야 한다"며 "호남이건 영남이건 지역정치 일당지배의 어두운 구름을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정의를 외치거나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에 관심을 가진 엉뚱한 얼뜨기들은 당연히 공천에서 배제되고 공천 언저리에도 가지 못한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병민 최고위원도 30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인 위원장이) 어떤 정치인보다 능수능란하게 여론을 움직이면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김 대표를 포함해서 좋을 리가 없을 것"이라며 "한 가지 확실해진 건 김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이 서로 짜고 치는 건 아니구나라는 건 확실해진 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아직 총선까지 긴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본인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될지는 고독한 김기현 대표의 결단"이라며 "김 대표는 모든 것들을 국민을 위해서 잘 이행해 나갈 의지가 있는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윤계는 영남 지역 중진의 수도권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26일 SBS라디오에서 "이분들은 영남권에 특화된 그런 정치적 이미지를 오랫동안 가져왔다"며 "그런 분들이 선거 3, 4개월 남겨 놓고 수도권에 와서 이전의 이미지를 깨고 수도권의 젊은층에 맞는 새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공천이 곧 당선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은 영남권 출신들이 갑자기 수도권에 차출되어 가본들 선거를 감당할 수 없다"며 "영남권 중진 수도권 차출론은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정치 모델이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30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영남권 중진들의 서울 출마론에 대해선 "영남 분들이 올라온다면 수도권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제로다"라며 "출마든 불출마든 그 안에서 해결해야 되지 영남 고양이를 끌고 와서 수도권에 풀어놓으면 적응 못해서 밥도 못 먹는다"고 강조했다.

인 위원장의 '영남권 험지출마론', 용산 대통령실이 부여한 미션?

이 전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누군가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두가지 미션(임무)을 줬다고 주장했다. 첫째 미션은 영남권 중진들의 서울로 출마시키든지 아니면 아예 불출마, 또 하나는 경쟁력이 없는 수도권 당협위원장 정리라는 것.

이 전 대표는 "인요한 위원장이 임명되자마자 꽤 신뢰있는 사람이 저한테 정보를 주더라"며 "미션은 두 개로 ①영남의 3, 4선 중진들 서울로 올려보내거나 불출마시키기 ②수도권에 경쟁력 없는 당협위원장 다 자르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정보가 맞는지 틀린지 반신반의해 설마 했는데 ①이 맞았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②도 맞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의 경쟁력 없는 당협위원장을 잘라라는 게 얼마나 웃긴 것이냐 하면 수도권에서 두세 번, 서너 번 떨어진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러냐하면 갈수록 수도권 분위기가 나빠져서 그렇다"며 "지금 수도권 당협위원장들을 손대는 순간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빠져나올 사람 많다"면서 집단 탈당 가능성도 언급했다.

진행자가 "김기현 대표도 영남 중진이니까 김 대표가 아니라 다른 쪽에서 인요한 위원장에게 그 미션을 줬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실?"이라고 궁금해 하자 이 전 대표는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현근택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30일 CBS라디오에서 인 위원장의 발언에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통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부원장은 인 위원장이 김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번 통합위 회의할 때 '제가 그동안 통합위에서 제시한 거 많이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며, "(김 위원장을) 장관, 장차관, 당 사역 다 모인 자리에서 키워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기현 대표가) 당대표 되는 과정을 본인의 능력으로 돌파한 게 아니"라며, "대통령의 의중이 실리면서 (당 대표 자리로) 간 김기현 대표 입장에서는 이거(수도권 출마)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